누드 잡지가 빚어낸 AV 배우 [75-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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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비디오 역사 총정리18 개의 글 중 4 번째 글입니다.

AV 배우는 과연 배우인가?


「여배우」란 어디까지나 「연기」하는 여성이며, 극중에 리얼한 성교 신이 있어도 그것은 「연기」이다. 포르노가 필름으로 제작되고 있었던 시대는, 일반 영화든 포르노 영화든, 그러한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비해 「AV여배우」라고 불리는 여성의 상당수는, 「여배우」 같은 정식적 연기의 학습 경험이 없다.

반대로 말하면 연기의 훈련을 받지 않아도 성립하는 것이 「AV배우」이다. 전장에서 썼던 대로, AV는 드라마적 연출은 아니고, 다큐멘터리적 연출을 얻어 성공한 장르다. 그러므로 여성 출연자가 감독이나 관객으로부터 요구되는 것은 「연기」는 아니고 「진심의 반응」 이라고 한 감정·신체 표현이다.

특히 성행위의 장면에서의 감정·신체 표현의 신선함이나 풍부함은, 작품의 평가를 크게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여배우」와 「AV여배우」를 결정적으로 나누는 것은, AV여배우에 있어서는 「연기」보다 「성감 표현」에 비중이 있는 점이다. 

SEX만은 리얼한 「진심의 반응」이다, 혹은 그렇게 있으면 좋겠다고 의식되는 것이 AV여배우이다. 그러므로 AV에서는 성행위의 장면이 되면 감독은 출연자의 소행에 세세한 연출을 실시하지 않고, 자유로운 감정과 「연기」가 아닌 자태를 꺼내는 노력을 하는 일이 된다.

[[저자가 얘기한 바처럼 AV는 다큐멘터리의 틀에서 출발하였고 실제로 성행위를 촬영하는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리얼하고 정직한가이다. 미리 준비된 각본에 따라 캐릭터를 창조하는 연기와 다르고 관객과 생생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연극과도 다르다. 이것이 AV의 모호함이자 특징일 것이다.]]

 

인기리에 판매했던 핑크 잡지, 비닐책


80년대 소위 비닐책이라 하는 핑크 잡지는 투명한 베일의 얇은 옷을 입고 간신히 음모가 비치는 아슬아슬한 수위를 지니고 있었다.

AV는 그 여명기에 「움직이는 포르노 잡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선전되었다. 「포르노 잡지」란 설명할 것도 없이 「비닐책」의 약어이다. 투명의 비닐 봉투(정확하게는 폴리에틸렌봉투)에 봉입되어 서서 읽을 수 없도록 만들었기에 「비닐책」 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도매상을 통하지 않고 서점에 유통되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제작·판매된 출판물이었다.이 비닐책은 일반 누드 사진 집보다 현격히 노출도는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기 부분이 무수정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외설 표현의 합법적인 영역에 자리매김해지면서도 시가에서 판매할 수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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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을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이유로서 서적 도매상(중개)를 통하지 않는 독특한 루트로 판매되었기 때문에, 자주규제의 필터에 걸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점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잡지 윤리 연구회(잡륜)라는 자문기관이 조직 되고 있어 노출도의 높은 사진집 따위는 유통을 거부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비닐책 잡지사가 AV를 촬영하다


AV 제작사 KUKI는 77년도에 설립되어 비닐책을 전문으로 찍던 잡지사였다. 이후 AV를 제작하며 비데륜의 좌장이 된다.

비닐책 전문 판매점포가 풍속거리나 교외의 바이패스 가에 잇달아 만들어지며 기성의 서적 유통 루트로부터 빗나가는 것으로 비닐책은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특히 당시의 AV메이커의 몇개인가가, 비닐책 발행소를 모체로 한 회사였던 일을 들 수 있다. 80년대 AV 메이커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1. 닛카쓰나 일본 비디오 영상 따위의 영화 제작사
  2. 우주 기획, VIP, KUKI와 같은 비닐책 잡지사

영화 제작사계의 AV는 로망 포르노나 포르노 영화에 출연하는 인기 누드 여배우의 기용이 많아, 그녀들은 출연 전에 제대로 연기를 철저히 가르쳐지고 있었다. 반면 잡지 발행소계 AV는 여배우가 기용되는 것이 적고, 독자적으로 스카우트 하거나 잡지의 누드 모델로서 활약하고 있던 여성을 기용하는 케이스가 일반적이었다.

 

언더그라운드 아이돌의 탄생


소위 자판기책이 유행하며 서점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유통규모가 노상거리로 확대된다

누드 그라비아의 증가가 누드 모델의 수요증가를 일으켰던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수요에 응할 수 있도록, 현장에 뛰어드는 여성도 일본 국내에 충분히 존재했다. 

75~76년경이 되면서 자동 판매기에 의한 전매라는 획기적인 유통 시스템을 얻어 「자판기책」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조류를 낳는다.

점원이 없는 비대면식의 구입의 용이함에 의해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 발행 숫자를 단번에 증대시킨다. 초창기 모델들은 캬바레의 호스테스 걸, 가출 청소년, 각성제에 중독된 야쿠자 정부 등이 주류였다. 이후 젋고 신선한 미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여성 주간지에 아르바이트 광고를 내고 OL, 여대생을 모집하기에 이른다. 

인기 비닐책 모델인 아라이 리카[荒井理花] 는 로망 포르노에 진출하지만 연기 교육이 전혀 안 된 탓에 세간의 비난만 받았다. 모델과 배우는 전혀 다른 것이다.

비닐책은 언더그라운드이기 때문에 팬끼리의 교류가 어려운 장르이지만, 인터넷 따위의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있어, 한정적, 폐쇄적인 환경에서 같은 아이콘(모델)에 향해 팬이 집약되는 상황이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오버 그라운드의 데이터에 나타나지 않는, 안보이는 지층에서의 누드 미디어의 시장 확대와 팬의 과열화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포르노 잡지 팬층의 확대와 성숙은, 80년 AV여배우의 붐에 직접 결합된다. 비닐책의 장르에서의 미소녀화, 우상화 현상이 없으면, AV여배우의 우상화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포르노 잡지 모델의 용모 레벨의 향상은, 인기 모델들이 영화계로 맞이되어지고 있는 것으로 뒷받침된다. 가령 닛카쓰 로망 포르노 4작품에 출연한 하야노 쿠미노[早野久美子]가 대표적이다.

 

최초의 AV 배우, 타쿠치 유카리


타쿠치 유카리[田口ゆかり]는 비닐책의 아이돌적인 인기를 계기로 불법책, 비디오를 거쳐 하드코어를 촬영하기에 이른다

80년, 81년은, 이 같이 모델과 배우를 크로스오버 하는 여성이 산발적으로 등장했던 시기였다. 영화의 세계에 진출해 가는 모델이 있는 한편으로, 영화와는 반대로 탄생해 얼마 되지 않은 언더그라운드인 비디오의 세계에 몸을 던진 모델도 있었다.

타구치 유카리는 비닐책의 아이돌이었다. 비닐책의 출연은 약 200권, 제작자에 의하면 「출연작의 초판 2만부가 팔렸다」라는 초인기 모델이다. 

그녀는 카라미책[カラミ本] 이라 불리는 SM 스타일의 비닐책에도 출연한다. 카라미책에 출연하는 경우는 출연 료의 할증도 있었기 때문에, 타구치 유카리는 금액에 매력을 느껴 결단했다고도 생각된다.

 

불법책의 확산이 낳은 AV 배우


타쿠치 유카리[田口ゆかり]의 나이트 쇼트 사진집, 불법책은 연극적 시나리오가 없는, 성교 신만으로 구성된 사진집이며, 성교시의 표정과 자태만이 볼만한 장면이다. 

일본 최초의 불법책은 비닐책의 누드 모델을 사용할 수 없어 소프랜드의 풍속양에 출연을 의뢰해 완성한다. 그런데 이 불법책 제일호가 대히트 한 것으로부터, 비닐책 제작자중에도 불법책에 손을 대는 사람이 나타나 또 몇 명의 비닐책 모델도, 불법책으로 전환한 제작자의 의뢰를 받아 하드코어 촬영에 응한 것이다. 

인기와 지명도는 그만큼 쇠약해지지 않았던에도 불구하고, 타구치 유카리는 그 흐름을 타, 불법책에 출연했다. 82년이 되어, 마침내 타구치의 국내용의 불법책 제일작인 『나이스 쇼트』가 발매된다. 이 타구치 유카리의 불법책 출연 수락, 하드코어 사진집 출연이, AV여배우 탄생의 최초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전 장에서 각술한 요요기 감독의 도큐멘트 더 자위 시리즈에 출연했다. 7개의 AV에 출연하고 해외 수출용 무수정 불법비디오까지 촬영하며 명실공히 불법비디오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얻는다

다만 이 시대는 렌탈 제도가 정착하고 있지 않고, 고액의 정가 판매가 주류였기 때문에, 그녀의 AV가 많은 사람들의 눈에 닿는 일은 없었다. 또 81년부터 82년까지의 그녀의 AV출연작은 대부분이 영화풍으로 촬영된 소프트 코어 작품이며, 그녀가 표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연기로서의 「좋아하는 얼굴」만이었다.

타구치 유카리의 하드코어는 불법책으로 처음으로 실현된 것이었다. 사상 최초 언더 그라운드·아이돌이 하드코어를 보인 점으로써, 그녀는 누드 모델로부터 한 걸음, AV 여배우의 옆에 발을 디딘 것이다. AV여배우의 속성은, 비디오보다 불법책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생각된다. 

다만 불법책은 본질적으로 올드 웨이브를 지향하는 포르노였다. 그리고 타구치 유카리는 그 올드 웨이브 지향을 극복하는 「자연스러움」 「자유로움」를 표현하는 연기력을 갖추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완벽하게 「AV여배우」적 존재로는 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다른 요인으로 AV의 시대로의 가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 칼럼은 후지키 TDC [본명 : 후지키 타다시]씨가 탈고한 성인 비디오 혁명사 [2009년, 幻冬舎新書] 를 바탕으로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다수의 의역과 오역이 있으므로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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