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녀 장르가 대세를 이루다 [84-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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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비디오 역사 총정리18 개의 글 중 5 번째 글입니다.

당국의 감시를 피해 AV로 옮기다


이렇게하여 언더 그라운드 포르노의 세계는, 단체[單体, 홀몸이란 뜻] 미소녀 비닐책 시대부터 하드코어의 시대로 급격하게 쉬프트 했다. 미소녀이며, 아이돌이며, 하드코어 스테이지, 우선 처음에 출판 매체로 통합되어 확립된 것이다.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불러 들였던 것이, 타구치 유카리라는 존재였다.

이 시기 불법책 제작에 종사하고 있던 스탭의 일부는, 경찰의 어려운 추궁을 받은 후, 이윽고 AV로 표현의 장소를 옮겨 간다. 불법책의 현장에서 하드코어 촬영에 순응한 스탭에게 있어, 동영상 매체에서의 하드코어 연출은 그만큼 높은 허들은 아니었다. 

 

불법 비디오에 고전하는 비디오 업계 


불법비디오의 대명사로 세탁소 켄짱[洗濯屋ケンちゃん]을 꼽을 수 있다. 비디오 플레이어 경품으로 인기리에 증정하여 아이러니하게도 가정용 비디오 보급에 기여한다.

불법책이 지하 시장에서 미소녀 실전 노선을 매진 하고 있는 무렵, 포르노 비디오도 도큐멘트더·자위나 우주 기획의 은팩의 등장에서 활성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디오 업계에가 실전 노선으로 순조롭게 나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자주규제 기관(=업계내부에 의한 검열 기관)인 일본 비디오 윤리 협회(비데륜) 때문이다. 82~83년 당시, 포르노 비디오의 하드코어의 표현을 인정하지 않고, 또 화면상에서 성교 묘사를 3분간 이상 연속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쿠치 유카리[田口ゆかり]가 출연한 사무라이 아가씨[サムライの娘]가 무수정으로 불법 복제되기에 이른다. 이 비디오는 북미권을 겨냥한 하드코어 포르노였다.

비데륜에는 영화 윤리 협회[[줄여서 영륜,映倫 이라고 표현하며 영화를 심사하는 자주 규제 기관]]의 관계자가 많아서 비디오의 표현이 영화와 같은 드라마적 세계관을 버리고 성행위만의 표현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도큐멘트더·자위」를 심사한 비데륜은 「이야기성이 부족하다」라고 클레임을 붙였다고 하고, 코지타니 히데키의 「미토모코의 수줍음 노트」도 같은 주의를 받고 있었다.

불법비디오는 비디오 플레이어의 붐과 함께 구매 층의 확대를 보인다. 푸른 체험[青い体験], 세라복과 카빈총[セーラー服とカービン銃] 따위의 불법비디오의 인기작도 잇달아 발매되어 시청자에게 하드코어의 자극과 흥분을 이식해 버린다. 여기서부터 비디오 메이커의 역습이 시작된다.

우주기획의 미소녀 장르가 빅뱅을 터트리다


우주 기획이 84년에 발매한 유미코 19살[裕美子19歳]은 “실전” 을 문구로 미소녀 노선을 명확하게 굳힌 명작이었다. 

물론 불법 비디오의 형식으로 무수정 섹스 장면을 감상할 수 있었으나 84년 1월 무명의 미소녀가 출연한 한 작품과 출연자를 둘러싸고 일본의 포르노 비디오의 상태는 크게 바뀐다. 우주 기획으로부터 발매된 그 작품명은 「미스 실전 유미코 19살」, 출연자의 이름은 타도코로 유미코[田所裕美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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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작품이 최초의 실전 노선을 천명한 것은 아니다. 이미 실전 작품은 다른 메이커에서도 발매되었고 실전이 드문 것은 아닌 것이다. 다만 주어인 여자아이-미소녀를 전면에 밀어 냈던 것이 신선했던 것이다.

아이조메 쿄코[愛染恭子], 타쿠치 유카리[田口ゆかり] 등도 실전 비디오를 찍었지만 베테랑의 누드 모델이 연기한 것이었을 뿐 무명의 미소녀 만의 자연스러움이랄까? 통속적 미녀의 극히 서민적인 부분이 부족했었다. 이런 업계에서 유미코는 신선 그 자체였다.

그녀는 3개월 뒤 후카자와 나츠미[深沢奈津美] 로 이름을 바꿔 누드 사진집을 낸다

「미스 실전 유미코 19살」는 2만개의 세일즈를 기록해, 이후, 우주 기획에 대해 「미스 실전」은 미소녀 출연작의 탑 브랜드로 해서 시리즈화해졌다.

당시 우주 기획에는 「이제 자위나 기획물은 안 된다」 「지금부터는 실전이다. 미소녀로 실전이다」라는 의식이 있던 것이라고 한다. 이 메이커의 심경은 당시의 불법책이나 불법비디오의 상황과 대조하면, 매우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불법책에 있어서의 「실전」의 상태화와 모델의 수준 향상, 불법비디오에 있어서의 「하드코어」의 임펙트와 흥분은 이미 독자들을 매료시켜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 언더그라운드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던 시점에서 오버그라운드인 비디오 업계가 이를 뛰어넘기 위해선 소위 “빅뱅”을 터트릴 필요가 있었다.

 

불법책의 구성을 모방하다


유미코 19살[裕美子19歳] 은 성교 중 뜬금없이 공원이나 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이 들어갔다. 왜 그럴까? 비데륜[심사기구] 의 성행위 연속 묘사 규제를 회피하기 위함이었고 이런 연출은 성교 커트 사이에 입가심으로 모델의 초상화를 끼워넣는 불법책의 구성과도 닮았다.

미소녀 장르는 비록 모자이크를 걸쳤음에도 톱 레벨의 아름다운 모델에 불법물의 하드코어를 결합한 것으로 「움직이는 불법책」이라고 할 정도로 「유미코 19살」의 구성은 놀라울 정도 당시의 불법책을 닮아 있었다.

감독인 이케다 가즈오[池田一夫]는 경험을 통해, 아마추어의 하드코어는 연출을 하지 않고 흐름에 맡기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은 의도된 바대로 만들어졌다. 오늘의 시점으로부터 봐도 「미스 실전 유미코 19살」의 타도코로 유미코는 아름답다. 그 순수한 아름다움은, 현대의 AV여배우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미소녀 스타일의 확립


이후 우주 기획은 타케시타 유카리[竹下ゆかり] 의 뭐든지 합니다[何でもやります] 로 새로운 스타일을 이식한다

하지만 AV가 독자적인 표현 스타일을 확립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타케시타 유카리[竹下ゆかり]는 타도코로 유미코같이 순결성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지만, 타도코로의 도시성이나 총명함에 대해, 타케시타는 약간 시골 같아 보여 세련되지 않은 인상의 미소녀로 비춰졌다. 

카메라 쪽으로부터 그녀에게 질문이 행해진다. 여기서 타케시타 유카리가 과격한 발언을 할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에 향해진 시선이나 감정 표현은 매우 신선하고 생생하다. 카메라의 렌즈의 일점을 응시하고 응석부리는 것 같은 웃는 얼굴을 하고 섹슈얼인 질문에 곤혹, 부끄러워해, 초조함등을 나타내, 표정이 빙글빙글 바뀐다.

시치미를 떼거나 카메라를 노려보고 거부의 시선을 보이거나 한다. 이러한 변덕으로 어지러운 감정이나 표정의 변화는, 주연 여배우의 감정 표현에 일관성을 요구하는 영화적 연출에서는 낳을 수 없는 요소로, 영화의 모방을 한 종래의 AV에는 그려졌던 적이 없었다.

이것은 「유미코 19살」안에조차 없었던 표현이었다. 「유미코 19살」에 있어서의 감독과 모델의 관계는, 촬영자와 피사체의 역으로부터 일탈하지 않는 고정적이어 깬 것인데 대해, 「나를 여배우로~」에 있어서의 코지타니 감독과 타케시타 유카리의 관계는, 감독과 모델의 입장을 넘은 진한 것이 되어 있다.

카메라를 가진 코지타니는 타케시타 유카리에 그녀의 육체에 닿아, 관능적인 표정을 이끌어 내려고 한다. 그녀는 카메라를 응시해 「수줍은 것 같은, 견디는 것 같은 표정을 보인다. 카메라가 파악하는 것은 영화 여배우가 역을 연기하도록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표정은 아니고, 그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솟아난 무의식의 반응인 것 같다.

 

감독이 여배우와 직접 섹스하다


감독 코지타니 히데키[小路谷秀樹] 는 다큐멘터리적 촬영 기법을 AV에 이식해 실험적인 성공을 거뒀으나 타케시타 유카리를 발굴해 미소녀 물을 정작시킨 공도 적지 않다. 물론 본인이 먹기도 했다 음;;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은 연기 지도도 아니고, 애무에 의한 리얼한 자극이다. 한층 더 코지타니는 애무 뿐만이 아니라, 비디오의 후반으로는 남배우로서 여배우와 실전을 실시하고 있다. 코지타니 히데키 자신이 「선수 교대다」라고 해 타케시타 유카리와 몸을 겹친다. 영상의 인상에서는 프로의 남배우보다 코지타니가, 보다 섹슈얼인 반응을 꺼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지타니는 비디오 모델을 화면의 대안의 제삼자적인 존재로부터, 보다 가까운, 리얼한 존재로 승화시켰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감독이 스스로 남배우가 되어 모델에 접근해, 성적 대상과 분명히 의식시켜 접촉하는 연출을 취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감독이 배우와 관계할 수 있었을까?


물론 감독이며 카메라맨이기도 한 스탭이, 남배우같이 여배우와 접촉하는 것은 당시에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비닐책이나 불법책으로부터 비디오 제작으로 쉬프트 한 스탭중에는, 스스로 카메라를 돌리면서 모델과 섹스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 포르노 잡지 시대는 남배우에게로의 출연료 지불을 절약하기 위해서 카메라맨이나 편집자가 남자역의 여배우로서 모델의 상대를 근무하는 것이 빈번하게 있습니다. 스탭은 촬영 겸 출연을 싫어하지 않는다(혹은 적극적으로 바란다) “

이런 발상의 전환은 비닐책을 촬영하던 현장의 습관이 AV에 적용되어 빚어진 현상이었다. 포르노 잡지 세대로 가까운 장소에서 일을 하고 있던 일과 코지타니가 이미지 포럼의 출신으로 있던 경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즉 AV는 언더 그라운드 포르노의 스타일과 영화의 방법론으로부터 피와 고기를 얻은 것이다.

 

백화요란의 시대를 맞이하다


좌측에서부터 나가이 요코[永井陽子], 스기하라 미와코 [杉原光輪子], 하야카와 마나미 [早川愛美], 나가자와 케이코 [中沢慶子]
좌측에서부터 코바야시 히토미 [小林ひとみ], 아소우 미오 [麻生澪], 아키모토 토모미 [秋元ともみ]
좌측에서부터 타치하라 유카 [立原友香], 사에지마 나오 [冴島奈緒], 마에하라 유코 [前原祐子]

이렇게 AV업계는, 모델의 청결감이 세일즈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웠다. 이윽고 외관에 대해 고급감 있는 미녀가 잇달아 등장한다. 84년말부터 85년에 걸쳐, AV에 제1차 미소녀 붐으로 불리는 시대가 방문했다. 다만 이 시대의 인기 모델의 상당수는 「실전」을 하지 않았다.

 

전설의 카와이 사토미가 등장하다


그리고 87년 9월 미소녀 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카와이 사토미[かわいさとみ] 가 우주 기획의 전속으로 발탁되며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다. 데뷔작인 나의 태양[ぼくの太陽] 은 2만개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는데 내용은 남녀가 몸을 겹치는 장면조차 없는 극단적인 소프트 노선이었다. 왜 그녀들은 「실전」을 하지 않았을까? 

 

소속사가 실전 섹스를 반대했다


우선 제작사측에 모델을 알선하는 소속사는 그녀들에게 하드코어를 시킬 의사가 없었다. 야심 있는 소속사일수록 AV로 인기를 얻은 모델을 영화나 연예계(가수 따위의 형태로)에 팔려고 의식하고 있어, 더티한 이미지가 붙는 실전은 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서 「유미코 19살」나 「나를 여배우로~」나 현장 스탭의 과잉인 의욕에 의해 해프닝적으로 성립한 것으로, 실전이 절대적 필요 조건으로서 요구된 수법은 아니었다는 면이 있다.

「유미코 19살」에 대해서는 전술했던 대로, 매니저가 업계에 서툴렀던 것에 의해 우연히 모델이 받아들인 연출이었고 「나를 여배우로~」 은 타케시타 유카리가 풍속양이었던 경력이 있어 실전에 대한 거부가 적었던 것으로 판명된다. 게다가 타케시타 유카리는 코지타니 감독의 사무소인 『4D』에 소속되어 같은 사무소라는 일로 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좀 더 밀착적이었기에 실전도 가능한 것이다.

AV는 「미소녀 실전 노선」이라는 극적인 기폭제를 가지고 대중에게 침투했다. 하지만 AV가 메이저화해 가는 것에 따라 발생하는 고액의 출연료는 일찍이 미니스커트나 비키 수영복으로 데뷔했을 아이돌 예비군이나, 로망 포르노를 목표로 할 예정이었던 여배우의 초년생이었다.

미소녀물은 포르노 여배우의 이미지를 연예계의 아이돌에 필적하는 밝고 화려한 이미지로 바꾸는 것을 공헌했지만, 「실전」의 임펙트는 방치해 갔다.

 

[이 칼럼은 후지키 TDC [본명 : 후지키 타다시]씨가 탈고한 성인 비디오 혁명사 [2009년, 幻冬舎新書] 를 바탕으로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다수의 의역과 오역이 있으므로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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