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 촬영과 헌팅 시스템의 확립 [87-89년]

성인 비디오 역사 총정리18 개의 글 중 9 번째 글입니다.

일본에서 AV가 만들어진 원초적인 이유


우리는 어째서 어덜트 문화가 하필 일본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원초적 이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단순히 성진국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한국만큼 성문화가 보수적인 사회가 일본이다. 

70년대까지 일본의 포르노의 주류였던 성인 영화는, 기본적으로 미국 포르노의 연출법인 드라마의 영역으로부터 크게 일탈하는 일은 없었다. 거기에는 기재나 촬영 형식의 대부분이 미국발이었던 일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80년대에 태어난 어덜트 비디오는, 십 년동안 많은 독자적인 수법을 짜냈다. 비디오의 시대에는 기재의 개발이나 표준화의 면에서 일본이 세계에 선행해, AV제작자들은 그 혜택을 다이렉트에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몇 번이나 말하지만 비디오 상품 중에서도 매우 빠른 단계에서 시장 형성에 성공한 AV는, 항상 선행적으로 신기재를 도입할 수 있었고, 작품 중에 일정시간의 성 묘사조차 확보하며 자유롭게 실험적 표현을 시행할 수 있는 토양이 있었다. 동시기에 70년대 이후의 일본 독자적인 서브컬쳐나 포르노 미디어가 발전한 영향도 겹쳐, 80년대, AV는 단번에 수법을 진화시켰다.

 

셀카 촬영 기법, 하메도리의 등장 배경


하메도리[ハメ撮り]는 여성과 배드신을 연기하는 남성이 카메라 촬영자도 도맡아서 찍는 방법이다. 어원은 남성이 여성 성기에 끼우면서 [ハメ] 찍는다 [撮り]는 의미에서 하메도리[ハメ撮り]가 된 것이다. 사진 출처 -이치카와 마사미[市川まさみ], STAR-732

과거 포르노 영화나 AV 에서는, 성교나 그 연기를 하는 남녀를 제삼자의 카메라맨이 객관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8mm 비디오 시스템 개발에 의한 비디오 카메라의 소형 경량화와 연속 녹화 시간 연장에 의해, 남성이 (물론 때론 여성도) 한 손으로 카메라를 조작하면서 SEX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연출로 AV 세계는 카메라맨에 의한 삼인칭 시점으로부터, 남배우(겸카메라맨)의 일인칭 시점의 영상에 쉬프트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메도리의 가장 큰 장점은 적은 제작 비용으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본래 연출 의도와 무관하게 제작비 절감을 목적으로 하메도리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인데 최근 AV 업계가 불황기에 접어들어 이런 궁여지책은 한층 심화되고 있다.

하메도리가 AV의 현장을 석권 한 이유는 둘 있다. 첫째는 촬영 스탭을 배제해, 현장에서 남녀가 일대일로 마주보는 것의 긴장감이나 친밀감이 구래의 수법에서는 그릴 수 없었던 에로티시즘을 낳은 것과 남배우(겸카메라맨)의 시점과 시청자의 시점이 일치하기 때문에 시청자가 영상에 감정이입하기 쉬운 일. 이것 들은 AV 의 영상 질감을 보다 다큐멘터리적이고 리얼한 질감으로 하는 면에서 효과적이었다.

둘째는 고가의 업무용 기재를 빌리거나 많은 스탭을 사용하지 않아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메도리의 경우, 촬영 현장이 조명이 필요한 스튜디오나 큰 방일 필요는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감독이 모델을 데려 러브호텔이나 자기 방에 들어가, 두 명만으로 촬영하는 일도 가능하다.

스튜디오 용 조명, 업무용 카메라, 스탭, 차량…… 하메도리 현장에서는 그것들이 모두 불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에 의해 AV는 제작비의 면에서 큰 폭으로 코스트 다운되었다.

 

실험적 기반으로 창안된 하메도리


87년 발매된 네 멋대로 해라, 실전 여배우의 본모습[勝手にしやがれ 本番女優の素顔レポート] 는 하메도리 장르를 대중에게 최초로 각인시킨 작품이다. 이세린 타로 [伊勢鱗太朗] 감독은 단골 남배우에게 카메라를 갖게해 여배우와의 뒤엉킴을 내멋대로 촬영한다. AV 아이돌이 지금까지 보인 맨얼굴을 드러내고 사타구니를 개방하는 리얼리티는 충격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세린 타로 [伊勢鱗太朗] 가 하메도리를 찍은 것은 85년부터이다. 러브호텔 끄는 것을 잊어버림[ラブホテル消し忘れビデオ] 시리즈는 자동 녹화로 연출이나 연기 지도의 존재하지 않는 영상이지만, 감시자가 없는 밀실 공간이라는 것만으로 버릇없고 향락적인 장난의 풍경, 공기를 AV여배우를 기용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다.
첫 일체형 8mm 카메라인 소니 CCD-V8, 저걸 짊어지고 촬영하기엔 어깨가 심히 결릴 것 같다…

87~88년이라는 시기에 하메도리가 나타나는데는, 촬영기재의 개발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다. SONY가 첫 일체형 8mm 비디오 CCD-V8을 발매하는 것은 85년 1월이다.

그 후 녹화 전용이지만,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핸디컴 1호기 CCD-M8을 거치고, 가을에는 오토포커스의 보합식 경량기 V8IAV가 발매된다.

촬영을 하면서 애무해야하는 하메도리에서 한 손 조작은 절대 조건이었다.SONY의 8mm 비디오가 한 손 조작 디자인에 철저하게 구애되어 개발된 덕분에, AV에 있어서의 하메 촬영은 보급되었다고 해도 좋다. 거기에 일본 AV의 독자성의 열쇠가 있다.이것은 AV의 수법 진화가 비주얼 기기의 진화와 일치한다.

 

AV 배우가 공급되는 과정 [스카우트-소속사-제작사]


가령 예를 들어 사쿠라 마나[紗倉まな] 의 소속은 어디일까? 그녀는 MINES란 소속사에 속하여 SOD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절대 SOD 직원이 아니다!!

먼저 89년, AV업계에서는 캐스팅(배역)과 현장 진행을 포함한 제작 시스템은 확고한 것이 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것은, 프로덕션으로 불리는 파견 업자가 거리의 스카우트나 모집 광고에 의해 AV에 출연하고 싶은 여성을 모아, 그녀들을 제작 회사에 파견해 스튜디오나 호텔에서 촬영한다는 패턴이다.

거리에서의 모델 권유는 「스카우트 맨」이라고 불리는 전업자가 실시해, 그들은 출연에 흥미를 가진 여성(이 단계에서는 반드시 AV출연을 승낙하고 있지 않는 경우도 많다)를 파견 업자에게 인도한다. 거기서 출연 교섭을 한 후, 승낙한 여성들을 제작 회사에 알선한다는 시스템이다.

메이커가 출연자의 조달까지 굳이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AV제작의 과정에서 가장 귀찮고 사회적 비난을 받기 쉬운, 리스크가 큰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헌팅 비디오의 등장


대표적인 헌팅물은 모모타로 영상출판[桃太郎映像出版] 의 겟츄[GET] 레이블일 것이다. 2002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무려 17년간 남배우 아가와 요지[阿川陽志] 가 고정출연하며 여성을 낚는다. 트레이드 마크로는 엄지척과 함께 미소를 흘리며 “겟또 [ゲット]” 를 외치는 장면이다.

이후 한층 더 AV의 연출법을 근본으로부터 뒤집는 연출법이 각광을 받는다. 오늘날 AV신에 인기 장르로서 정착한 「헌팅 비디오」라고 불리는 수법이다. 

제작자 자신이 거리에서 스카우트(즉 그것을 헌팅이라고 칭한다) 하는 모습을 영상에 기록, 교묘한 작업 대사로 여성을 잡거 빌딩의 계단 따위로 속옷 모습으로 하거나 러브호텔에 데리고 들어가 성교에 이르는 과정을 라이브로 보이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제작자가 스카우트, 프로덕션의 역할도 담당해, 분업화 된 AV제작의 작업의 흐름을 동일 작품으로 일괄해 보여 버리는 참신한 다큐멘터리 촬영이었다.

최초의 헌팅물, 액션 비디오


최초의 헌팅물은 89년 치카마츠 하지메[近松はじめ] 감독이 만든 액션 비디오[アクションビデオ] 시리즈는 실제 일반인이 출연한 리얼 헌팅물이었다.
좌측의 구봉숙을 닮은 남자가 치카마츠 하지메[近松はじめ] 감독이다. 해당 사진은 액션 비디오와 무관하며 우측은 카와이 토모요 [かわい知世]

감독의 치카마츠가 헌팅역을 하여 거기에 비디오 카메라 맨이 시부야나 키치죠우지, 록뽄기의 가두[街頭]를 걸어 눈에 띈 여성(당연, 젊은 미인)에게 말을 건다. 대사는 벌써 정형이 있어, 대체로의 패턴은 「5분만, 선금으로 1만엔 지불하기 때문에. 수영복 모델을 부탁합니다」라고 말을 거는 것이다.

이전, 치카마츠는 패키지용으로 여성에게 양해도 없이 사진기로 얼굴 사진을 계속 찍지만, 그것을 의심스럽게 여기거나 반대로 흥미를 느끼거나 하는 여성의 표정이 그대로 나타난다. 당연, 대부분의 여성은 헌팅에는 반응하지 않고, 최초만 멈춰 서도 “구체적인 이야기”가 된 순간에 도망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진 출처 – 액션비디오 8, 오키나와 편 [アクションビデオ8沖縄編]

여기서 “구체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속옷을 보이면 5000엔, 유방을 보이면 1만엔, 이라는 사례의 제시로, 거기서 전해듣는 파렴치한 요구야말로 작품이 본래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에 합의한 여성에게는 다음의 스테이지가 준비되어 5만, 10만이라는 금액으로, 베드신을 찍게 해 받을 수 없을까 교섭이 시작된다.

 

돈으로 매수한 여성을 호텔로 대려가 섹스에 성공한다. 충격적인 것은 출연 여성은 모두 일반인이었다. 심지어 마무리 장면없이 갑자기 페이드 아웃되어 끝내는 놀라운 연출 센스까지;;[상상에 맡기는 것]

교섭은 항상 신사적으로 행해질 것은 아니다. 반 강제적으로 속옷을 노출시키거나 신체에 손대거나 하기 때문이다. 벌써 불쾌한 기분이 되어 있는 여성은 사례를 받자마자 도망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보다 큰 금액 제시에 주저 하면서 결국 승낙하거나 웃는 얼굴을 띄워 호의적으로 성교에 도달하는 여성도 있어, 그 적나라한 대응이 도큐멘트로서 또 포르노로서 흥분을 부르는 것이었다. 결국 돈 앞에선 장사없다

그녀들은 촬영용의 메이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누드 모델에 적절한 세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보통의 모습이었거나, 포르노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은 보수적 성격에 보이는 여성이 시원스러운 욕설로 응하거나 헌팅을 거부해 도망하거나 갖은 험담을 퍼붓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으므로 영상에 잔혹하고 우스운 리얼리티가 있다. 그것들은 연출에 의한 장식을 배제해, 오로지 도큐멘트로서 기록한 점에 「액션 비디오」의 독특한 오락성과 에로스가 있었다.

 

헌팅 비디오가 AV에 끼친 공헌


AV에 대하여 핑크 여배우풍은 아닌, 아마추어 같은 청초한 미녀가 어떠한 교섭의 바탕으로 카메라의 앞에 서는 일이 되었는지, 그 경위는 결코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수수께끼의 부분이며, 시청자의 커다란 흥미의 대상이었다. 그 수수께끼에 하나의 해답을 낸 것도 「액션 비디오」시리즈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자.

AV 업계는 헌팅 비디오에 의해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테마를 발견한다. 완전히 무명의 서민적 여성이 포르노 촬영되는 과정을 라이브로 도큐멘트 하는 「아마추어」이다. 일본인의 AV에 대한 집요한 흥미는, AV가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 그 자체를 기록한다는 획기적 표현을 낳은 것이다.

 

[이 칼럼은 후지키 TDC [본명 : 후지키 타다시]씨가 탈고한 성인 비디오 혁명사 [2009년, 幻冬舎新書] 를 바탕으로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다수의 의역과 오역이 있으므로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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