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비디오 성장에 따른 신문화 물결 [90-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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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화 시장으로 이행하는 AV


매대에 판매용으로 진열된 비디오 테이프, 언제부터 사람들은 돈을 주고 비디오를 구입하게 되었을까?

90년대 전반의 AV계에는, 또 하나 큰 구조 변혁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셀 비디오」라는 새로운 유통 형태이다. 「셀 비디오」 란 쓰여진 바같이 셀=소매되는 비디오다.

AV 뿐만이 아니라 일반 영화도 DVD로서 보통으로 소매 유통하고 있는 현재에 있어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90년대 초두까지, 비디오 작품은 어디까지나 렌탈이 주류였다.

  • 80년대 등장한 인디즈 비디오의 성격 및 형성 배경에 관하여 ▶ 인디즈 비디오

물론 예외로서 정가의 1만 수천엔을 지불해 렌탈 소프트 신품을 구입하는 호사가가 있거나 결과적으로 시장의 성숙을 보지 않았지만, 소매만으로 유통한 LD (레이저 디스크) 판의 AV 상품도 있었다.

또 87년에는 출판 중견의 대륙 서방[大陸書房]이 첫시도로서 서점에서 1800엔의 비디오를 판매했다. 그것은 아이돌 비디오나 AV를 주력 상품으로서 한때는 궤도에 올라, 정가 1000 ~3000엔의 판매가 채산에 맞는 것을 증명했지만, 이윽고 카사쿠라 출판이나 에이치 출판 따위의 경합 상대가 등장하면서 대륙 서방의 매상은 감소해 간다.

메이커의 성격상, 판로를 서적 유통에 의존했기 때문에 반품도 늘어나, 결과적으로 비디오 사업이 경영을 압박해 92년의 도산(부채 97억엔)을 불렀다. 대륙 서방의 셀 비디오는 좌절 했지만, 그 시도에 의해 비디오 판매의 가능성에 많은 야심을 불러 일으킨다.

 

셀 비디오 샵 체인점, 비디오 염가 판매왕의 등장


90년대 성인 비디오를 소매화시킨 기업형 체인, 비디오 염가 판매왕[ビデオ安売王]

또 80년대 후반, 어덜트 숍의 매장판매나, 남성잡지의 광고를 사용해 통신 판매를 실시하는 특가 비디오로 불리는 2차 유통 상품(렌탈 상품의 재고 처분이나 도산 메이커의 판권을 계승한 염가 비디오, 혹은 악질적인 것으로는 카피 상품)도 등장해 일정한 시장을 확보했다.

AV가 소매화로 나아가는 준비는 80년대말에 벌써 갖추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과도기를 거쳐 93년에 본격적 셀 비디오 숍으로서 등장하는 것이 「비디오 염가 판매왕」체인(일본 비디오 판매 주식회사)이다.

회장 사토 타이지[佐藤太治] 는 많은 매스컴에 노출되어 스스로를 회사의 얼굴로서 팔기 시작했다.테리 이토[テリー伊藤] 와 나란히 선 광고를 기억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승산이 있었다. 

사토 타이지에 의하면 중,노년 유저에게는 렌탈점에서 빌리고, 반납의 두 번에 걸쳐 점원과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식이 귀찮고 수치적이라고 하는 의견이 많아, 2000~3000엔 정도의 가격대라면, 바 구입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소리가 많았다.

 

비디오 염가 판매왕의 급성장 배경


시간을 준수하여 반납하는 렌탈 시스템은 무척 귀찮고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요금만 적절하면 차라리 구입, 소장하고픈 잠재 수요층은 저변에 깔려있었다.

그래서 그는 애초 비디오 구매층을 30-60대 남성으로 가정했다. 또 사토우는 미국에서의 셀 비디오 시장의 급성장이나 일본에서 월트·디즈니가 CD숍을 중심으로 판매한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가 100만개 이상 팔린 실적을 주시하고 있었다.

AV 케이스 표면을 보면 사진같은 씰이 붙어있다. 심사 기관을 통과해 자체 심의를 받았다는 의미이다.

제작비나 재료비의 저하도 있어, 비디오 상품은 한 개 1000~1500엔으로 도매하는 것이 가능하고 판매 가격은 1980~2980엔이니까, 대략적으로는 총이익 5할이라는 이익율의 좋은 점이다. 사토우는 이러한 장사로서의 맛이 좋다는 느낌을 적극적으로 선전해, 강경한 확대책에 의해, 95년까지 프랜차이즈 1000 점포 숫자를 달성한다.

이 때 사토우는 비디오 염가 판매왕이 제작하는 성인 비디오는 비데륜의 심사를 통하지 않고 판매한다는 결단을 내린다. 이 결단이 후에 심사 단체 난립을 낳아, 셀과 렌탈이라는 두 다른 시장이 적대하면서 존재하는 일본제 AV만이 가지는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 AV를 규제하고 심사하는 자주 심사 기구 비데륜에 대하여 ▶ 음란 여배우
  • 비데륜이 규제를 가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사례 ▶ 불법 비디오
  • 비데륜은 유사 섹스 행위를 중시했으며 실전 섹스에 보수적이었다 ▶ 버블경제의 암운

 

서구에서 밀려오는 헤어[음모] 노출의 흐름


독일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면서도 판타지를 담고 있다.

이 무렵 해외의 아트계 사진집 붐이 일어나, 헬무트·뉴턴이나 로버트·메이프르소프, J·F·젼베르등 패션 사진의 거장이 촬영한 누드가, 버블기의 문화잡지로 여러가지로 소개되었다. 첨단적 아트라는 대의명분의 아래, 많은 헤어[음모] 노출 사진이 잡지에 게재된 것이다.

그것들을 특집한 사진 전문지가 경찰로부터 경고를 받는 시련도 있었지만, 90년에는 예술적 누드이면 헤어 노출을 용인해야 하는 것이다는 분위기가 우세가 되었다.

  • 물론 7-80년대에도 누드 사진집이 있었으나 반드시 적정선이 존재했다 ▶ 누드 잡지
  • 성교나 SM을 담은 무수정 누드집 불법책은 말 그대로 불법이었다 ▶ 불법 잡지
시노야마 기신 [篠山紀信] 이 촬영한 배우 히구치 카나코[樋口可南子] 누드 사진집, water fruit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91년 1월에 시노야마 기신 [篠山紀信] 촬영의 히구치 카나코 사진집 『water fruit』가 발매, 한층 더 동년 가을, 미야자와 리에[宮沢りえ] 가 누드 사진집 『Santa Fe』를 발표한 것으로 헤어 해금의 흐름은 결정적인 것이 된다 (미야자와의 사진집에서는 헤어가 비친 사진은 불과 1점이었지만).

 

비데륜의 강력한 헤어 규제


노회한 비데륜 위원들이 AV를 심사하는 모습, 대부분은 경시청에서 퇴직 후 낙하산으로 들어왔다.

이러한 흐름에 대하는 비디오 업계의 반응은 2종류 있었다. 우선 일본 비디오 윤리 협회의 심사를 「받은 렌탈 상품은, 협회의 방침에 의해 헤어 노출이 일체 인정되지 않았다. 이 방침은 2006년에 비데륜이 심사 기준을 개정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AV 업계가 비데륜의 강한 수정 기준을 계속 받아들인 것은, 90년대에는 아직 렌탈이 시장이 우위를 점하며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에 비데륜의 심사 기준이 안전한 유통을 보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렌탈 즉 대여점을 통해 AV를 유통시키기 위해선 비데륜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였기에 비데륜의 위치는 절대적이었다]]

 

헤어규제에서 벗어나려는 AV의 움직임


그런데 렌탈 AV와는 다른 곳부터 헤어 표현에 도전하는 메이커가 나타나 비데륜과는 다른 흐름을 만들어 낸다. 「여자의 비탕,女の秘湯」 시리즈 (ザイクスプロモーション 作) 이다. 동비디오는 공식상 온천 가이드의 체재를 취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노천탕에 익는 AV여배우의 누드 묘사에 역점을 둔 내용으로, 그 누드는 헤어 부분을 수정하고 있지 않았다.

이 작품은 통신 판매나 서점에서 판매되어 4980엔이라는 비교적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히트 해, 중노년 비디오 유저의 숨은 인기 상품이 되었다.

여자의 비탕 시리즈 첫번째 작품은 90년 9월의 발매로 앞서 살펴본 히구치 카나코나 미야자와 리에의 사진집에 시기상 앞서는 것이다.

초기는 헤어(같은 것)이 보이는 것은 일순간만이었지만, 91년 이후 노출이 급속히 과격화해, 93년(비디오 염가 판매왕 설립의 해)에 발매된 「탕녀,湯女」시리즈에서는 여배우의 헤어의 업이나 자위 행위를 상기시키는 요염한 움직임이 묘사되어 그 에로티시즘은 AV에 접근한 레벨이 되어 있었다.

 

외설성을 판단하는 모호한 기준


이러한 비디오가 경찰의 적발을 받지 않고 용인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판매 데이터가 비디오 염가 판매 왕의 시작에 반영되어 있지 않을 리는 없다.

헤어=음모 표현 그것은 일본의 표현자에게 있어 극히 섬세한 문제이다. 일본에서는 헤어 표현을 외설로 할까 하지 않는가의 판단에 관계되어, 현재도 구체적이고 엄밀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헤어 뿐만이 아니라 성기나 성교 표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찰에게는 내규로서 일정한 판단 기준이 있는 모양이지만(움직여서는 안 된다고나 남녀의 몸이 겹치고 있는 상황은 안 된다든지 말하는 정도), 외설의 최종 판단은 재판소의 전권 사항이며, 누드나 포르노의 제작 판매에 관련되는 업자는 재판소, 혹은 그 전단계로 경찰이 판단하는 시시비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90년대 이후 AV를 단속하는 주체는 중앙 경시청에서 지방 자치체로 옮겨진다 ▶ 버블 경제

외설 판단은 말하자면 사법의 블랙 박스이며, 그러한 상황은 항상 일본의 포르노 표현을 착종 시켜 왔다. 90년대에 등장한 자이크스[ザイクスプロモーション] 나 비디오 염가 판매왕도, 적발 리스크의 큰 상품을 취급하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염가 판매왕의 경우는 외설적으로 한계) 적발되지 않았던 것이 시장의 확립으로 연결되어, 이윽고 AV에 새로운 표현을 준다.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AV 신문화 흐름


무라니시 토오루가 다이아몬드 영상을 거하게 말아먹은 뒤 95년에 복귀해서 찍은 “실록 젊은 사모님, 実録若奥様 小田かおる” 으로 본격적으로 AV의 헤어 묘사가 성적 뉘앙스를 가지게 된다. -이후 오다 카오루는 남편의 사업실패, 뇌경색으로 쓰러지며 매우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성 사실로서 인지될 때까지의 몇 년간, 그들이 취급하는 작품은 아슬아슬한 회색 존에 있었기에 요주의 상품으로서 비디오 시장에서 견제가 지속 되었다.

헤어 묘사가 성적 뉘앙스를 가지는 것은 95년 무라니시 토오루가 감독 겸 남배우로 출연하며 80년대 로망 포르노 여배우와 실전 한 「실록 젊은 사모님 오다 카오루 実録若奥様 小田かおる」이고 그 노선은 토요타 카오루 감독에 의한 「완전 노출 치골 페티시즘,完全露出 恥骨フェチ」으로 완성된다.

  • 80년대 하드코어 노선을 구축하며 비데륜과 등진 토요타 ▶ 음란 여배우

94년, 드디어 V&R가 비데륜 심사를 무시해 토요타 카오루의 연출작 「MARY JANE 카와이 메리제인, MARY JANE 河合メリージェーン」로 헤어 표현에 과감하게 어프로치 했다. 하지만 비데륜과 V&R의 결렬 회피를 위한 정치 대결로 인하여 토요타는 V&R에서의 제작을 속행 할 수 없게 된다.

그 후 토요타가 염가 판매왕 산하의 제작 회사에서 찍었던 것이 「치골 페티시즘, 恥骨フェチ」이었다. 배우 니노미야 치세[篠宮知世] 의 음모를 무수정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성기와 펠라치오 신조차 매우 얇은 모자이크가 가릴 뿐으로, 토요타의 비데륜 규제에 대한 원한의 강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치골 페티시즘, 恥骨フェチ」은 여배우의 레벨의 높이와 노출도, 내용의 높은 완성도에 의해 4만개로 여겨지는 경이로운 세일즈를 기록.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경찰의 적발을 받는 것이 없었다. 이것에 의해 AV는 새로운 차원에 돌입했다고 하고 좋다. 이제 비디오 제작자들이 비데륜을 거치지 않는 무심사 AV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일이 된다.

 

비디오 염가 판매왕의 파산


요즘은 아직 업계 관행상 비데륜 심사를 한 대여 비디오와 염가 판매왕의 셀 비디오를 같은 차원에서 다루기 어렵고, 염가 판매왕 작품은 기성 AV 전문지에서 다루기 힘들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심사나 무심사는 별로 의미는 없으며 염가 판매왕은 수정이 적다는 평판에 많은 남성객이 몰려들었다.

비디오 염가 판매왕의 회장, 사토 타이지[佐藤太治]

이렇게 해서 염가 판매왕 체인은 궤도에 오른 것처럼 보였다. 93년 12월에 가게를 개업시킨 어느 오너에 의하면, 개업 당초에 월 300만~350만엔, 반년 후에는 450만엔 정도의 매상이 있어 경영은 지극히 순조였다고 한다.

하지만 염가 판매왕 체인은 96년 2월의 사토 타이지[佐藤太治] 회장 사임을 기회로 붕괴해 갔다. 사임의 이유는, 염가 판매왕이 해적판을 판매했다고 해서 렌탈계 AV메이커 큰 손 28사로부터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되었기 때문이다.

상품 안에 AV메이커의 카피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문제는 염가 판매왕 발족 직후인 94년에 벌써 표면화하고 있었지만, 사토 타이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문제의 근원은 염가 판매왕의 상품 공급 루트에 “특가점[特価屋]”이라고 불리는 2차 유통업자가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상술하지만, 재고처분이나 도산 메이커의 영상판권을 구입해 재판매하는 특가점 일부에선 80년대 시스루 비디오 유통 따위를 경유한 AV업계의 다크사이드 세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특가점들이 모으는 상품안에는 정교한 카피품도 혼입해 있기 때문에, 염가 판매왕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판매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사토 타이지를 셀 비디오의 무대로부터 내쫓는 일이 된 것이다.

그런데 , “염가 판매왕” 간판을 내린 후에도, 숍 오너에게는 비디오 판매의 점포가 남아있다. 또 염가 판매왕이 제1호점을 개점하고 불과 2년 동안에, 셀AV라고 하는 상품은 충분히 인지되어, 염가 판매왕 이외의 후발 판매점이 증식해, 거기에 상품을 도매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업자가 다수 나타났다.

가령 사토가 개점시킨 점포만이라도 벌써 1000개가 있으니, 그 1개의 점포에서 5개가 팔리면 전체로 5000개이다. 이 예산은 AV버블 붕괴 이후 매상의 침체에 괴로워하고 있던 제작자들에게는 매력적이었다.

 

[이 칼럼은 후지키 TDC [본명 : 후지키 타다시]씨가 탈고한 성인 비디오 혁명사 [2009년, 幻冬舎新書] 를 바탕으로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다수의 의역과 오역이 있으므로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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