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미 유마 Re Start 자서전23 개의 글 중 10 번째 글입니다.

반드시 캐나다로 유학가겠어


아사미 유마가 졸업한 쿄아이 가쿠엔 고등학교 [共愛学園高等学校] 군마현에서 유일하게 영어과가 있는 사립학교다. 참고로 모든 일본의 중,고등학교는 편차치라는 것이 존재해 비평준화로 분류되며 위 학교는 편차치 60정도로 군마현 내에선 상위권에 해당하는 학교이다.

중3시대는 수험 시즌이기도 했습니다.성적은 그럭저럭 우수하고, 중2때는 영검 준2급 [[영검이란 실용 영어 검정 시험을 의미하며 각종 공채와 내신에 반영되는 시험이다. 준2급은 대략 고2 수준에 해당됨 – 역주]]을 따고, 중3에서는 학교의 대표로서 영어의 스피치 테스트에 나갔습니다. 진학률이 높은 학원도 다니고, 쉬는날에는 아침부터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빠른 시기에 고등학교 추천 입학이 결정되었습니다.

추천을 받은 학교는, 현내에서 유일하게 영어과[英語科]가 있는 사립 고교로 영어회화 교실에도 함께 다니고 있던 마유코[まゆこ] 와 같은 여고로 갈지 동경했던 공립 고등학교로 갈지 매우 고민했습니다만, 꼭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서, 이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반드시 유학갈거야! 그 뒤는 조치 대학교에 진학해, 장래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어

중1의 봄방학에 갔던 캐나다에 홈스테이. 옆에 있는 것은 스테이의 남자아이

나는 친구에게, 장래의 꿈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중 1의 봄방학에는, 홈스테이에 간 적도 있었습니다. 마유코[まゆこ] 로부터 「함께 가지 않을래?」라고 권해졌던 것이 계기로 상당히 흥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마유코[まゆこ] 는 이른바 유복한 가정의 아이라서 「집엔 그렇게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혼자서는 위험해서 보내고 싶지 않아」 라고 어머니에게는 반대되어 간단하게 허락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단념하지 못하고 땅에 엎드려 조아림을 해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출세해서 반드시 갚을테니까! 부탁해요」 나의 열의와 이 말이 결정적 수단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주었습니다. 홈스테이 하는 곳은 캐나다의 빅토리아였고 제게는 첫 해외였습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모두 신선하고 자극적이었습니다. 거리풍경은 물론, 커다란 슈퍼, 넓은 길, 그리고, 당연한 것 처럼 잔디밭이 펼쳐있어 농구 골대가 있는 커다란 집, 스쳐 지나가면 “헤이!”라고 서로 말을 거는 소박한 사람들…

내게 영어는 순조롭게 들려왔습니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나라의 선생님으로부터 영어를 배웠습니다만, 캐나다의 영어는 매우 깔끔해서 알아 듣기 쉽고, 자신에게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테이에선 간식으로 생당근이 나오거나, 유학처 학교에서 파업이 있어, 수업이 없어져 당구를 하며 노는 일도 있었습니다만 (또 캐나다에 유학가고 싶어 다음번엔 장기로 오랫동안 있을거야 반드시 갈거야!) 캐나다에서 선물로 산 장식물은 지금도 친가의 현관에 두고 있습니다.그것을 볼 때마다 (언젠가 반드시 캐나다에 간다) 그렇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 때, 홈스테이를 경험한 것으로, 「유학」은 나의 인생 안에서의 커다란 목표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생활과 진정한 첫사랑


쿄아이 가쿠엔 고등학교 [共愛学園高等学校] 의 교복

고등학교로부터는, 전철 통학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지에서는 제복이 제법 예쁘다고 알려져있어 볼드색의 세라복을 입는 것은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영어를 공부해, 절대로 유학가겠어) 그런 희망에 불타고 있던 나는, 유학이라고 하는 목표를 위해서 입학 직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교칙에서는 아르바이트는 금지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만, 홈스테이의 비용도 부모님께 돌려드려야 하고,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인정보잡지 『구인 저널』으로 찾아낸 아르바이트는, 역건물의 햄버거 숍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난 평일의 저녁 5시부터 밤 10 시경까지, 휴일도 없이 아르바이트 우선으로 일하는 매일입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타케짱[タケちゃん – 앞서 첫경험 상대임 클릭] 와의 관계를 구질구질 계속하고 있었습니다만, 나의 기분은 완전히 식고 있었습니다. 데이트를 해도 섹스 해도, 상냥함이나 애정이 느껴지지 않고, 나 이외의 여성과 바람피고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몰래 봐 버린 타케짱[タケちゃん] 의 휴대폰에는, 다른 여자 아이와의 메일이 빈틈없이 들어가 있던 것입니다. 훨씬 훗날에는, 같은 아르바이트 선배와 사오시마이 [竿姉妹 – 구멍동서 같은 뜻] 였던 일도 알았습니다. (아 이제, 안 될 것이야.. 타케짱에게 있어 나는 놀이감이 아닐까) 그런데도, 경험이 풍부하고 미지의 세계를 가르쳐 주는 타케짱[タケちゃん] 과의 관계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새로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공업고등학교의 친한 남자아이랑 같이 놀다가 알게된 유우군[ユウくん] 이에요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 준 남자입니다. 지금까지 좋아하게 된 타입과는 완전히 달라, 유우군[ユウくん] 은 「상냥해서 느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첫 인상이었습니다. 처음은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았지만 메일의 교환을 계속하는 동안에, 지금까지 느낀 적이 없는, 따뜻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이 후, 유우군[ユウくん]으로부터 고백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타케짱[タケちゃん] 과의 관계가 있는 것을 안 데다가, 「나라면, 널 더욱 소중히 해 줄 수 있어」라고 말해 준 것입니다. 그런 유우군의 상냥함에 끌려 타케짱[タケちゃん]과의 관계를 끝내는 결심이 섰습니다.

유우군[ユウくん]은 상냥할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싸는 어머니, 누나와 동생들 가족의 분위기가 굉장히 따뜻해서, 나는 자전거로 2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그의 집에, 자주 놀러 갔습니다. 처음으로 섹스가 기분 좋다고 생각한 상대도 유우군[ユウくん] 입니다. 그와는 처음부터 기분이 통한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섹스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일까?


실은 유우군[ユウくん]은 동정으로, 처음의 엣치는 타케짱과도 잘 사용하고 있던 큐우노 이치[[유년시절부터 쭉 살던 집을 의미하며 이곳에서 술집도 경영했다 자세한 사항은 클릭]] 으로 했습니다. 그는 긴장한 나머지, 한 번 쇠약해져 버렸지만, 난처한 것 같은 표정이 공연히 사랑스러워서 악전고투 하는 그에게, 「달라! 거기가 아니라니까」 라고 말하면서, 어떻게든 완수한 것입니다. 끝난 뒤로,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서로 말해, 진정한 의미로 「연결되었다」 같은, 매우 행복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섹스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후부터는 호기심과 부족함을 뛰어 넘으려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어느 콘돔이 좋은지 몇 가지 종류도 시험해 보거나 하루종일 벌거벗은 채로로 몇 회 할 수 있는지 도전하거나 근처의 공원에서 두근두근 해 보거나……. 장난스러운 섹스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유우군[ユウくん]과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그의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먹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상당히 개방적인 사람으로,

유우는 동정인데 괜찮아? 후데오시로 [筆下ろし, 남성의 첫경험을 의미] 상대를 해 주었다니 고마워

라고 기쁜듯이 말해졌을 정도입니다. 이 저녁식사의 자리에서, 나는 눈물을 흘려 버렸습니다.

무슨 일이야? 맛이 없는거야?

모두가 걱정해줬지만 그렇지 않아요 오랫동안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 식탁을 둘러싸지않은 우리 가족을 떠올리게 된 거죠 (가족은 따뜻한데……. 이런 따스함을 맛본 적 없었던 것일지도 몰라 이대로 유우군과 결혼해, 자식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온화하고 행복한 유우군 가족과의 시간… 그렇게 유우군[ユウくん]과는 몇번이나 헤어지거나 재결합하거나 그 사이에 별도인 사람과 교제하거나 해, 최종적으로 헤어져 버립니다만, 유우군[ユウくん]의 집에서 맛본 단란한 식탁은, 나의 동경이었습니다.

16살이 되면 결혼하고 싶어 한 사람과 오래 사귀고 싶다

나는 이 때부터 결혼을 의식하고, 누군가와 교제할 때는 미래를 생각하면서 사귀게 되었습니다.그 후의 이야기입니다만, “이 사람(당시 사귀고 있던 그)과 결혼 할 것이다” 라고 마음먹고, 시청에서 받은 혼인신고에 두사람의 이름을 써 넣어 소중히 보관하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제출할 날을 꿈꿨던 적도 있었습니다.결국 헤어질 때 찢어버렸습니다만…….

 

술과 담배를 즐긴 청춘시대


고1때, 한번은 해보고 싶었던 금발에 도전했던 나. 레어샷!

방과 후의 아르바이트와 유우군[ユウくん]과의 연애에 빠져 있던 나에게 있어, 학교는 점차 지루한 장소가 되어 갔습니다. 정말 좋아한 것은 영어뿐으로, 그 이외의 과목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어진 것입니다.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것을 좋아한 나는, 영어 이외의 수업 중에는 오로지 번역만 했습니다.

CHEMISTRY의 노래( 『너를 찾고 있었다』등) 을 영역하거나 『해리포터』나 『타이타닉』 등의 서적을 번역 하거나….. 학교의 친구와의 관계는 결코 나쁘지는 않았지만, 여자라고 하는 특수한 환경에,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아르바이트를 쉬는 토요일에는 고등학교나 중학교 친구들과 모여서 매주 같이 놀았습니다.지금은 두 곳 다 졸업하고 있습니다만, 그 동안 전혀 몰랐던 술이나 담배에 흥미를 가졌던 것도, 그 때입니다.

당시의 나의 방은, 현관에 들어가 바로 옆에 있어, 부모의 눈에 띄지 않게 출입하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모두들 츄하이[缶チューハイ, 약간의 과즙 맛이 섞인 일본 술] 을 사들이고 유우군[ユウくん]이나 저희 집에 모였어요 저는 처음 겪는 자극에 푹 빠졌습니다. 아직 미성년이어서 정말 안되는 일인줄은 알았지만 젊음의 혈기였습니다.

저는 원래 체질적으로 술을 잘 못해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아요.저희 부모님도 술을 잘 못마시고 술집을 운영하시면서 정작 술 마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의 나는 바보처럼 술을 마시고 기운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이 때가 가장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아요. 다다미 4장 반의 제 방에 7명이 머무를 때도 있고 회식할 때 내보내고 있는 BGM은 언제나 GOING STEADY 나 마하 25, MONGOL800 곡을 틀고 “이제 잠이나 잘까” 할 때에는 어김없이 SMAP의 “라이온 하트”였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으면 당연합니다만, 지각이 점차 심해 져, 등교는 오후에 해버렸고 기분이 꿀꿀할 때는 집에서 아르바이트 바로 직행 하는 날이 증가해 갔습니다.

이대로는 출석 일수 부족해 유급인 것일까…… 유학하고 싶어서 이 학교에 들어갔지만, 만약 재학중에 유학하면, 졸업까지 1년을 더 다니는 일이 된다. 유급으로 4년, 유학하면 5년인가…

고등학교를 그만둘 때, 정말 좋아하는 푸딩을 못먹는다고 생각하니 슬펐어…

3학기에 접어드는 무렵에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해, 결론을 냈습니다. 친구에게는 일절 상담하지 않고, 「학교를 그만둔다」라고 결정한 것입니다. 5년간 학교에 간다면, 스스로 돈을 모아 유학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성기에는 4개의 점포를 운영한 아버지의 사업도, 그 무렵에는 모두 폐점했고 근처의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보고, 가계 사정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업료가 비싼 사립고교에 다니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부담이었고 지병인 류마티스를 안고, 익숙하지 않은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보고 있어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돈은 스스로 일해서 모으면 되고 부모님께 부담을 줄 생각은 없다. 일을 늘리고 집에도 돈을 드리면 엄마도 편해지지 않을까

어머니는 나의 결단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옛부터 「결정한 것이라면, 좋을대로 하면 된다」라고 하는 방침으로,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일에 대해서, 참견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재차 어머니에게 물었더니 「사야짱은 혼자서 정해놓고, 곧바로 행동해버리니까, 언제나 실랑이를 하고 있었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전부터 한다고 결심했던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굽히지 않는 성격의 나. 걱정하면서도 나의 결단을 존중해 주었던, 어머니께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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