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 여배우의 등장과 SM물 [85-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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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기관[비데륜]이 차지하는 위치


노회한 비데륜 위원들이 AV를 심사하는 모습, 이들 대부분은 경시청에서 퇴직 후 낙하산으로 들어온 경우가 많다.

1985년은 AV업계에 인상적인 사건이 있었다. 우선 비디오 렌탈점의 급속한 증가이다. 82~83년경까지는 비디오는 판매 상품에서의 유통이 주류였지만, 84년경부터 급속히 렌탈 숍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마크를 기억하는 자네, 나이가…?

84년에는 전국에 대략 2500 점포를 셀 수 있지만, 계속 증가하는 렌탈 숍에 AV를 납입하는 도매상에 있어, 비데륜심사라는 보증 문서를 얻는 것은, 유통 과정에서의 적발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서 중요했다.

또한 85년 2월의 신풍속영업 법 시행을 기회로, 비데륜의 심사를 받지 않은 비디오는 외설 비디오라고 판단해, 적발될 수 있다는 행정 지도가 경찰에 의해 드러났다. 

경찰이 비데륜의 이름을 보내 통지를 실시하는 것은, 배후에서 양자가 제휴하고 있는 것을 상상시킨다.

” 비데륜의 사무국은 대대로 경찰 퇴직자로 차지되어져 왔다 “

다만 이 시점에서 모든 AV메이커가 비데륜에 가맹하지는 않았다. 심사를 무시하고 상품을 발매하는 아웃사이더적 메이커가 몇 개인가 남아있었는데 이 언더그라운드 영역은 추후 서술하기로 한다.

 

정통 영화계 AV 메이커의 몰락


부엉이 마크가 인상적인 일본 비디오 영상(みみずくビデオ) 은 정통 영화 제작소 출신 스텝들이 세운 AV 메이커였다. 요요기 감독의 도큐멘트 더 자위 시리즈를 대히트시켰지만 신흥 메이커의 도전에 밀려 결국 1985년 도산했다.
KUKI, 우주기획은 핑크 잡지인 비닐책을 찍어내던 잡지사 출신이었다. 스텝 대부분도 영화계와 다른 비닐책 출신들이었다. 이후 영화계 VS 잡지사의 대결구도는 잡지사의 승리로 끝난다

 

소프트 노선에 반기를 든 이단아, 도요타 감독


도요타 카오루[豊田薫]는 85년 2월 KUKI 에서 데뷔한 후 h.m.p로 옮겨서 질내의 클로즈업 영상, 특유의 펠라치오 연출로 대중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토요타는 소프트화를 지향하는 AV신에 있어 가능한 하드코어 연출을 모색했다. 이런 아슬아슬한 묘사는 당연히 비데륜 기준과 위배되는 행동이었고 

항상 대립의 정면에 있던 토요타 감독은 결국 90년대 중반 비데륜 심사 규제가 없는 셀 비디오로 활동의 장소를 옮겼다.

그것은 작품의 질적 침체가 시장 안정의 최대의 장해가 되어 있던 셀 시장에 있어 구세주 적인 사건이었다.

 

구전 외설, 입술에 사랑을 담아, 후지 아카네 [口全ワイセツ くちびるに愛をこめて 藤あかね] 는 토요타 감독이 지향한 페티시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펠라치오 파이즈리 묘사가 특히 집중되었다.
이 작품의 특징은 투명한 점액이 드러나는 귀두에 여배우의 입술이 왕복하는 음경을 클로즈 업 하면서 점막·점액적인 영상의 다용화와 과장된 마찰음으로 페티시즘적 관능을 증폭시킨다

 

사업가 기질이 농후했던, 무라니시 감독


무라니시 토오루[村西とおる] 감독은 사업가적 수완이 뛰어났다. AV 배우와 결혼한 것으로 유명하나 50억엔의 빚을 지고 파산 후 가까스로 재기를 시도하는 등 순탄치않은 삶을 살았다.

대학생이었던 쿠로키 카오리[黒木香] 를 주연으로 한 SM이 좋아 [SMっぽいの好き] 로 명성을 쌓은 무라니시 토오루[村西とおる]는 크리스탈 영상을 대표하던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전 섹스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베르사유의 장미를 만든 만화가인 이케다 리요코[池田理代子] 를 이끌고 하와이의 휴일[ハワイの休日] 이란 섹시 비디오를 찍으며 메스컴의 화제를 일으켰다. 분명히 다른 비디오 메이커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크리스탈은 해외의 것이 많았는데 해외에 자주 로케를 간 이유는 해외작품의 매입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얀색 삼각 드로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사업가 기질이 농후했던 무라니시는 외국으로 날아가도 현지 화제작의 판권을 매수하는 것에 열을 올린다. 단지 그것만으로 외국에 가는 것도 아깝기 때문에 그 쪽에서 찍어주리라는 발상에서 장기 촬영이 된다. 

무엇보다 “외국에서 찍으니까”라고 하면 의외로 여자 아이도 벗어 준다고 하는 이 업계의 상식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요컨대 이 시대, 무라니시는 많은 모델을 데리고 외지로 로케에 가서, 단기간에 수십 개 이상의 소재를 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그의 촬영 현장은 강행군이 있는 상태에서 일정이 짜여져 하나하나 촬영을 깊이 생각하고 음미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유행처럼 번지는 SM 장르


치욕의 여자, 타치카와 히토미[恥辱の女 立川ひとみ]는 무라니시의 첫번째 실전작은 아니다. 다만 무라니시가 대중의 요구에 영합한 끝에 참신한 이형의 에로스에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은 지방의 토산물가게나 선술집, 노천탕을 전전하는 즉물적 SM이다. 초라한 토산물가게의 매장에서 방뇨를 강제당해 가게를 더럽혀져서는 곤란하면 저지하는 점주와의 진퇴양난으로 정신적으로 몰려 미친 것처럼 울며 아우성친다… 목욕탕에서 관장이 되고 자신이 배설한 오물을 전신에 퍼부을 수 있어, 마조히즘의 극치와 이상한 관능에 잠겨 도취한다. 이 사이코 호러에 가까운 여성의 성감 반응은, 이 시대에는 참신했던 것이다.

타치카와의 반응은, 아마 무라니시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항상 강행군의 스케줄로 임하는 무라니시는 여배우의 연기에 납득할 때까지 수정할 여유는 없다. 오히려 구체성이 없는 지시나 긴밀하고 가혹한 촬영 진행이 그녀가 의식한 연기 플랜을 펑크시켜, 광기인 듯한 반응이 나왔다고 생각된다.

요컨데 자기류의 연출이 여성의 새로운 성감 반응, 성감 연기를 무의식 중에 꺼내 버린 것이다. 「치욕의 여자」는 기획 자체, 독자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타치카와 히토미가 「치욕의 여자」로 보인 강렬한 신체 반응은 85년의 SM대중화의 영향하에 있다고도 생각되어 SM플레이가 여성의 새로운 성감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조교플레이로 심한 고통 속에 빠지면서 여성들이 관능으로, 환희로 전환해가는 과정은 장시간 촬영이 가능한 비디오 매체여야만 했다.

 

쿠로키 카오리로 시작된 음란 여배우


SM이 좋아[SMっぽいの好き] 는 발매된지 30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내용은 쿠로키 카오리와 무라니시의 섹스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유방을 묵살해, 발길질로 하는 폭력적인 무라니시의 전희에 대한 쿠로키의 반응은 의외롭게도 에로틱해, 관능에 묶어 성적 환희를 소리로 해 과잉 표현한다. 이상한 체위의 커닐링구스나 애널 섹스 따위 도착[倒錯]적인 플레이에 몰려닥치지만, 그녀는 그것을 공포의 표정을 보이면서도 쾌감으로서 받아들여, 환희와 감사의 표정을 보인다.
무라니시의 이색적인 연출이라면 저 조개피리를 꼽을 수 있다. 느끼는 레벨에 의해, 1회, 2회, 3회로 분다. SM이 이루어지고 무라니시가 “기분이 어때?” 묻자 그녀는 프, 프, 프 3번 피리를 불어 의사를 표현한다. 재밌는 연출이다.

쿠로키 카오리가 영향력이 있었다고 하면, AV 업계에 실전 비디오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끌어올린 것이다. 쿠로키 카오리는 귀족적인 얼굴 생김새였지만, 「미소녀」 와는 다른 분위기의 모습으로, 스타일도 그만큼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쿠로키 카오리는 요코하마 국립대학에 재학중이었는데 미술과 후배로 영화 “러브레터”로 유명한 감독 이와이 슌지가 있었다. 그와의 인연이 닿아 “캔디포핀즈” 라는 독립영화를 찍는다.

다만 그것이 「실전」이라는 행위에 의해 큰 화제를 만들어 내 폭발적으로 팔린 것이다. 자금적으로 우주기획과 같은 메이저에 목표로 할 수 없는 중소·신흥 메이커들은 무라니시가 잡은 방법을 답습하려고 해,

자사의 흥망을 「실전」 연출에 걸었다. 미인 여배우를 기용 할 수 없으면 과격해 화제성이 있는 연출로 승부수를 거는 것이다.

이후 「실전」이라는 흐름이 AV 안에 완전히 정착한다. 이는 약소한 메이커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유익한 영업 전략으로서 선택되어 업계에 침투해 간 것이다.

또 모델을 공급하는 소속사는, 외모가 뒤떨어지는 모델도, 과격한 성감 표현을 하는 것으로 높은 출연료를 얻을 수 있을 기회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쿠로키 카오루 이후, 그녀처럼 큰 소리로 허덕여, 남성의 상상력을 초월 한 치태를 보이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음란 여배우」라고 불리는 모델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음란함의 상징, 토요마루


토요마루[豊丸]의 본명은 카이 에리카이다. 적극적으로 남성을 요구하는 파워풀한 음란한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토요마루의 데뷔작인 흡음력~사상 최강의 외설[吸淫力~史上最強のワイセツ] 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이끄, 이끄” 라고 절규하는 버릇과 페니스가 두 개가 들어가고 애널섹스를 하는 등 아무리 모자이크라도 유사 실전일리는 없었다.

여배우의 이런 적극성은 아마도 쿠로키 카오리가 닦아놓지 않았다면 세상에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토요마루 자신이 그 영향을 인정해, “쿠로키 카오루의 AV를 우연히 봐,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라고 말한 인터뷰도 있다.

쿠로키 카오리같이 작품이나 감독을 선택하는 것을 하지 않았던 토요마루는 88년에만 20개 이상의 AV에 출연, 텔레비젼의 심야 프로그램에도 등장해, 쿠로키 카오리와 대등하게 80년대말의 SEX 디바로서 인기를 끌었다. 음란 여배우의 연쇄적인 등장은, 여성의 용모보다 퍼포먼스를 우선한 비디오의 조류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감독이나 남배우의 지시나 성 기술에 호응 하는 반사적 반응은 아니고, 여성의 내면으로부터 자율적으로 솟구치는 성적 쾌감의 크기를 리얼로 느끼게 했다. 영상적으로도 일본의 포르노 표현의 새로운 전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음란함은 어디까지나 연기일 뿐이다


촬영장에서의 무라니시 감독과 쿠로키 카오리의 모습, 둘의 관계는 매우 다정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쿠로키 카오리를 포함한 음란 여배우들이, 정말로 자기의 내면으로부터 그와 같은 격렬한 성감 반응을 표출 시켰는가 어떤가는 조금 의문이 있다.

필자는 당시, 많은 「음란 여배우」라고 불린 AV모델에 인터뷰 했지만, 그녀들 대부분은 조용하고 조신한 인상이었다. 그럼 「음란 붐」의 시대에 일어난 소란의 정체는 무엇인 것일까?

 

패션잡지 「AN AN」 과 인터뷰중인 쿠로키 카오리

” 섹스를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에 대한 저항은 없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지만, 나는, 섹스를 사람에게 보이게 한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카메라의 앞에 섰을 때에는, 그것은 모든 것이 “퍼포먼스”이며, 두드러지는 기반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성표현입니다. 그렇다고 이른바 연기는 아닙니다  『아사히 예능 87년 4월』”

「연기가 아닌, 어디까지나 성 표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필자는, 그것은 연기라고 해도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연출자의 지시에 의해 조형되는 메이저 영화의 기성의 연기는 아니고, 연출자와 연기자가 서로의 필링을 서로 존중해 자유롭게, 완만하게 완성하는 독립 영화의 「연기」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서 감독 이와이 슌지는 학내 선배였던 쿠로키 카오리의 자유분방한 학창 모습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 성적도 우수하고 개성적인 여성이었죠 영화에 과연 나올 수 있을지 몰랐는데 흔쾌히 승낙을 해줬어요 촬영중의 태도도 진지했고 뭐랄까 프로의 기분을 느꼈다. 다만 무엇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이라서 포르노에 나와도 쇼크는 없었습니다 『비디오 액티브 87년 10월』 “

쿠로키 카오리의 성감 반응이 일종의 「연기」라면, 다른 음란 여배우들도 카메라의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독립 영화와 유사했던 AV 제작 방식


토요마루[豊丸], 사키타 아오이[咲田葵], 오키타 유카리[沖田ゆかり], 쿠리하라 사키[栗原早紀] 등 음란 여배우 4명의 단체작 음란일족[「淫乱一族」] 은 도큐멘트 더자위를 연출한 요요기 감독이 만들었다. 제대로 된 각본을 기초로 드라마를 연출한 작품으로 이 음란 여배우 4명은 절제된 정극 연기를 펼치며 여배우적 자질을 입증한다. 그녀들은 결코 음란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AV신은, 한편으로 연예계의 아이돌에 필적하는 레벨의 미소녀가 다수 데뷔해, 유사 실전으로 소프트한 성교를 계속 연기하고 있었다.

그 한편, 음란 여배우들은 하드코어를 해내면서도, 촬영 현장과 시대의 요청으로부터 과잉인 퍼포먼스로 성감을 표현했다. 그것은 무라니시와 쿠로키 카오리의 기적적인 성과를 모체로 하면서, 연쇄 반응적으로 이형성을 팽창시켜, 토요마루의 신체 표현까지 가까스로 도착했다.

그녀들의 연기는 연출자의 조형은 아니고, 많은 부분, 여배우의 자발적 표현에 달려 있다. 이것은 연기자에게 연극의 강압을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 캐릭터 만들기를 협업하는 연출 스타일인 독립 영화적인 제작 환경이 만들어 낸 새로운 연기의 형태는 아니었을까? 즉, 거기서 「AV여배우」와 「여배우」의 「연기」의 형질의 차이가 보다 명확하게 된 것이다

 

[이 칼럼은 후지키 TDC [본명 : 후지키 타다시]씨가 탈고한 성인 비디오 혁명사 [2009년, 幻冬舎新書] 를 바탕으로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다수의 의역과 오역이 있으므로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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