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비디오 역사 총정리18 개의 글 중 7 번째 글입니다.

대규모 자본에 밀려 대항하는 중소 렌탈숍


비디오 대여점의 서재가 빼곡하게 매워있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 되었다

당시 비디오 렌탈샵의 증가는 점포간의 가격 경쟁을 격화시켜, 이 시기, 렌탈 요금은 300엔대로부터 200엔대까지 하락해, 한층 더 「100엔 렌탈」을 표방하는 염가점까지 등장했다. 

85년경 렌탈 요금이, 소프트의 소매가격의 1할, 1000엔에서 1200엔이나 한 것을 생각하면, 불과 2년에 3분의 1에서 10분의 1까지 요금이 내린 것으로, 이 일로부터도 당시의 렌탈 비디오 시장의 격변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대담한 요금 인하는 대자본을 백으로 한 대형점에 의한 경합점 구축책이기도 했다. 당시는 부업으로 개점하는 개인경영의 렌탈점도 많아, 재고 갯수가 적은 소형점은, 살아 남기 위해 독자적인 상품 전개로 접객할 방법이 취해지는 일도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독자적인 상품 전개」로서, 가장 빈번하게 행해졌던 것이 성인전용 소프트의 충실화다.메이저 자본의 대형 점포가 할 수 없는 상품 전개로서 많은 소형 개인점이 어덜트 코너에 늘어놓았던 것이, 바로 비데륜의 심사를 받지 않은 「무심사 비디오」 「인디즈·비디오」 였다.

 

인디즈 비디오의 출현과 인기


얇은 시스루와 같이 성기가 보일 정도로 얇은 모자이크를 박았다고 하여 일명 시스루 비디오라고 불리었다.

이들 비디오의 가장 큰 특징은 모자이크의 얇음이었다. 앞에서 서술한 대로, 비디륜 체제가 미완성이었던 85년 이전에는 비디륜의 심사를 받는 메이커와 무심사 메이커의 수는 대항하고 있었지만,비데륜 가맹 메이커가 단번에 증가한 85년 이후, 무심사 비디오는 비디오 상품으로서 이단의 입장이 되어, 어덜트 유저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AV 케이스 표면을 보면 사진같은 씰이 붙어있다. 심사 기관을 통과해 자체 심의를 받았다는 의미이다.

비디오 플레이어의 보급과 함께 증가한 포르노 비디오의 라이트 유저는, 무라니시 감독의 실전 비디오에 이어서 모자이크가 얇은 시스루 비디오를 렌탈점의 한쪽 구석에서 발견하여 불법비디오의 대용물이 될 수 있는 매력으로 받아들였다. 업주 입장에선 인디즈 비디오의 회전율은 아주 좋았기에 경쟁적으로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시스루 비디오는 모자이크의 얇음, 성기나 결합부의 투과성이 높았기 때문에, 실전 연출이 절대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시스루 비디오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에 따라, 실전 여배우의 수요도 증가해 갔다.

무라니시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 실전 여배우의 대부분이, 제 2작, 제 3작으로서 시스루 비디오에의 출연을 선택하는 일이 된다.

물론 메이커는 비교적 비싼 출연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랜탈샵의 증가와 샵의 지지를 얻은 일정한 판매 편수 확보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인디즈 비디오의 안일한 마인드


88년도 인디즈의 인기 메이커인 페가수스[ペガサス]가 지급한 출연료는 80-120만엔 사이였다. 물론 이 돈이 배우에게 전부 가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서 소속사가 80%에 가까운 고율의 이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인기배우들이 인디즈에 출연한 배경은 이런 소속사의 부당한 요구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저자인 후지키 TDC는 소속사와 관련해선 어물쩍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위 내용은 편집자인 본인이 별도로 보충한 내용임을 미리 밝힌다]]

다만 인디즈 비디오는 위험한 물건이기에 제작원이 패키지에 표시되지 않은 것이 많았다. 메이커 소재지를 파악으로 하지 못한 경찰은 렌탈 행위 자체가 음란물 반포에 해당한다고 해석해, 렌탈 숍을 적발했다.이런 사건은 자주 일어났다.

샵 적발의 예방책으로서 인디즈 메이커가 제 2, 제3 자주규제 심사 기관을 만드는 움직임도 나타났지만, 적발이 있으면 일단 메이커 자체를 소멸시켜, 별도로 다시 메이커를 시작하면 그만인 식으로 대충 넘겼다. 즉 언더 그라운드 업계 특유의 일회성 생각이 뿌리 깊었다.

피라미드 비디오[ピラミッド・ビデオ] 레이블로 성공을 거둔 대륙서방[大陸書房]은 30분이내로 짧막하게 찍어 개당 1800엔에 판매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장렬하게 전사한다…

이러한 체질의 탓으로 비데륜에 대신하는 신규의 심사 기관이 장기적으로 운영 유지된 예는 이 시기에는 없었다. [[인디즈 메이커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SOD이다. SOD가 비데륜에 대항하여 미디어 윤리 협회란 자주 심사 기구를 조직하는 것은 97년도이니 한참 뒤의 일이다]]

 

잇다른 소속사의 적발, 당국의 감시


미소녀 계열인 아키모토 토모미[秋元ともみ]는 올나잇 후지 예능프로에 고정출연을 하고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한다

그렇게 86년부터 88년에 걸쳐, 미소녀 노선과 실전-음란 노선, 이 두 노선을 축으로 하여 AV는 사회적 인지도를 충실히 쌓아간다. 무라니시 감독과 쿠로키 카오리는 심야 TV에 게스트로서 빈번하게 불렸고 아키모토 토모미[秋元ともみ], 하야카와 마나미[早川愛美]는 싱글 레코드를 발매해 신곡을 발표했다. 

AV는 텔레비젼이라는 선전 매체를 얻어 거대한 세력이 되어, 연예계의 아이돌 제조 시스템에 침식을 개시한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현상을 경시청은 좌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먼저 경시청은 무라니시 감독으로 대변되는 실전 AV의 확대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87년 9월경시청 소년 2과는 성인 비디오에 모델을 공급하고 있던 소속사 3사를 직업안정법 위반 용의로 적발한다. 신문 발표에서는 3사는 노동성 인가가 없는 “불법 프로덕션”이라고 밝혔다. [[소속사가 노동성 인가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성진국인 일본일지라도 섹스를 하는 유해업무에 모델을 알선하고 그것을 승인하는 일은 만무하기 때문이다.「노동자 파견법」(대상외 업무에의 파견)과 「직업 안정법」(유해 업무에의 소개) 에 근거하여 소속사는 위법으로 간주된다. 2019년인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AV를 배제하려는 연예계의 반격


아키모토 토모미와 하야카와 아이미의 TV 출연 영상

그러나 소속사의 일망타진은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데 88년 1월에 AV계를 흔드는 보도가 있었다. 「후지 종합 기획」 「캐스터 컴패니」 「투 리드」 등 큰 손이라 분류되는 대형 소속사 4곳이 털린 것이다.

「후지 종합」 「캐스터」의 적발은 무라니시 작품의 모델 공급원의 차단책이라고 생각되어 업계 내부에서도 상정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유사 실전」밖에 하지 않는 미소녀 모델을 거느리는 「투 리드」는 무라니시와는 전혀 접점은 없고, 거기에는 다른 의도에 의한 AV협박이 있는 것은 아닌지와 느끼게 했다.

쿠로키 카오리의 TV 출연 모습

「투 리드」 는 앞서 아키모토 토모미[秋元ともみ], 하야카와 마나미[早川愛美] 가 소속된 곳이며 텔레비젼의 심야 프로그램 따위에 빈번하게 출연시켰다. 일명 연예계에의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텔레비전국 프로듀서에 상당액의 뒷돈을 건네주고 있었다고 한다.

이 시대의 AV는 팬층을 증대시켜, 서브컬쳐적 세력으로서 고조를 보이고 있어 그 기세는 연예계의 아이돌 인기를 침식하는 것과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예능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투 리드」의 적발은, AV가 얼터너티브 세력으로서 성장해 가는 것을 우려한 연예계의 배제 지향이 현실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연예계와 AV간에 넘을 수 없는 벽


AV 여배우가 연예계의 금단의 벽을 부순 것은 93년도 이이지마 아이[飯島愛]가 유일하다. 일개 직업여성에 불과했던 그녀가 AV의 인기를 등에 업고 TV 안방자리를 꿰차면서 극적인 성공 신화를 일군다. 그러나 이이지마 아이의 사례는 극히 희귀한 사례로 꼽힌다.

동시에 이 사건은 AV계와 연예계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벽이 있어, AV모델이 연예계에서 아이돌이나 여배우에 전신 하는 허황된 소망은 무리라는 좌절감을 업계에 이식했다.

반면 적발 혐의가 노동자 파견법(대상 외 업무 파견)과 직업안정법(유해업무 소개)이었던 것은 경찰이 모델 프로덕션을 관리 성매매로 입건할 수 없는 실상을 밝혀내고 이번 기회에 업계 내에 실전 촬영으로 적발은 없다는 안도감이 확산되어 간다.
 

실전 섹스에 대한 의식의 변화


85년 우주기획에서 데뷔한 미소녀 계열의 나가이 요코[永井陽子]는 유사 성행위를 찍다가 크리스탈 영상으로 실전 데뷔를 하게 된다. 단순히 돈 때문에 실전으로 전향한 것인가? 그건 아니다.


무엇보다 연예계로의 신분 상승이 막히게 되자 이젠 AV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보다 포르노적인 표현을 목표로 해, 사람들에게 주목받든지 경제적으로 윤택하든지 해야 한다 라는 의식의 변화가 이 시기, 프로덕션이나 여배우로 싹트기 시작했다.
 

 ” 저, 자기 현시욕이 강해요 인생은 한 번밖에 없으므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다.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강합니다.그래서 에로비디오의 세계로 들어간 것도 그런 동기에서였습니다.돈이라기보다. 그래서 이대로는 어중간하게 끝나버리고, 어떻게든 한 단계 더 도약하려고 생각하고.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까지와 같이 보람있는 물건보다 제대로 실전에 임하는 편이 무엇인가 좋은 것이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비디오 더 월드, 88년 3월』 “

나가이 요코[永井陽子] 의 저 발언은 의미심장한데 그녀가 실전에 데뷔한 메이커는 크리스탈 영상으로, 상대역은 역시 무라니시 토오루이다. 이 시대에 그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 짐작케 한다.
 
 
[이 칼럼은 후지키 TDC [본명 : 후지키 타다시]씨가 탈고한 성인 비디오 혁명사 [2009년, 幻冬舎新書] 를 바탕으로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다수의 의역과 오역이 있으므로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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