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버블경제 붕괴가 낳은 AV의 암운 [88-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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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무라니시 토오루의 몰락


무라니시 감독은 80년대 AV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이자 사업가였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전라감독 [全裸監督] 은 2019년도 곧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다.

무라니시 토오루[村西とおる]는 88년 3월 인기 아이돌 타하라 토시히코[田原俊彦] 와의 육체 관계를 고백한 AV모델 카지와라 쿄코를 기용해 스캔들을 폭로하는 이른바 고마워요! 토시짱[ありがとう!トシちゃん] 이란 작품을 찍는데 이것이 쟈니스 사무소를 격노하게 만들었다.[[쟈니스 사무소는 일본 최대의 연예 기획사이다]] 

이것이 빌미가 되었는지 4월 28일, 무라니시는 미성년 소녀를 AV에 기용한 아동 복지법 위반 용의로 체포되었다. 무라니시는 22일간 구류되고 약식 기소로 석방되었지만, 이러한 사건의 경우, 종래는 모델을 소개한 소속사가 정면으로 서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이 때는 소속사의 적발이 없고, 감독 무라니시만이 적발되었다.

이러한 와중의 88년 9월, 무라니시 토오루는 그때까지 전속으로 제작하고 있던 크리스탈 영상을 전격적으로 이탈해, 스스로 통솔하는 “다이아몬드 영상”의 설립을 발표했다. 이것은 AV업계에 있어서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다이아몬드 영상을 설립하며 사장이 되다


국민적 아이돌로 불린 사쿠라기 루이[桜樹ルイ] 는 다이아몬드 제작사로 이적하며 전성기를 보낸다. 이는 무라니시 토오루의 실전 노선에 영합한 결과였다.

다이아몬드 영상이라면 사쿠라기 루이[桜樹ルイ] 부터 노사카 나츠미[野坂なつみ], 타나카 로사[田中露央沙], 히미코[卑弥呼], 코바토 미아이[小鳩美愛], 노기 마리코[小鳩美愛] 등 당대 최고의 디바를 보유한 제작사로 기억되나 정작 다이아몬드 영상 설립 직후에 대해서는 많은 독자의 기억은 모호할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다이아몬드 영상 설립으로부터 한 달을 기다리지 않고, 무라니시는 제작의 최전선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무라니시는 9월 29일, 3번째로 아동복지법 위반 용의로 체포된다. 동년 6월, 크리스탈 영상으로 제작된 “바람의 판타지 키류 마이코”의 주연 모델이 16세였던 것을 받은 체포이다. 단 이 AV의 감독은 무라니시가 아니고, 노사카 진페이[野坂珍平]였다.

그러나 정작 노사카 감독은 불기소, 단순히 면접만 봤을 뿐인 무라니시 감독이 기소된 점을 살펴봐도 이번 체포극이 무라니시 때리기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라니시 감독은 「일본 나이스당」이란 정당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하며 참의원 선거 출마표명을 했고 와세다 대학교에서 결기 집회가 예정되어있었다.

이것이 당국의 역린을 건드린 것은 아닌지 아니면 무라니시와 앙숙관계인 쟈니스 사무소가 정치적 배경을 움직인 것은 아닌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무라니시는 단단히 찍혀있는 상태였다.

 

 

비데륜에 의해 업계에서 방출되다


1개월 후, 보석된 무라니시에게는 한층 더 가혹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비디오 윤리 협회[=비데륜] 에 의한 심사 거부 통지이다.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처분 권고를 내리는 비데륜의 「자주규제 기관」으로서의 인식도, 경찰과의 일련 제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시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라니시는 이 비데륜의 통지를 만족해 받아들였다. 「완전 은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라고조차 발언해, AV제작으로부터의 철수를 풍길 수 있었다. 무라니시는 다이아몬드 영상에 불과 5개의 감독 작품을 남겨, 정식 무대로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남긴 명암


89년 남학생 4명이 한 여고생을 납치하고 40일 이상 성적 고문과 폭행을 가해 콘크리트에 암매장하는 일명 “여고생 콘크리트 사건”이 발생한다. 부검당시 피해자의 내장에는 바퀴벌레가 가득했고 뇌가 축소되어 있었다.

89년 “여고생 콘크리트 사건”이란 천인공노할 사건이 발생하자 전 메스컴의 관심이 그것에 쏠려있었는데 이를 틈타서 AV 메이커 아이비크[アイビック] 가 사건을 작품화시켰다. 모델을 드럼 통에 몸을 가라앉히거나 강간하는 씬 등 사건을 상세하게 재현하며 이를 AV로 찍었다.

비데륜은 6월 5일 “기억에 생생한 사회적 사건, 특히 소년이 당사자로서 관련된 사건은 소재로 다루지 말 것”이라고 가맹 각사에 통보한다. 작품의 소재까지 규제의 대상으로 하려고 하는 이 대응은, 자주규제의 역을 넘은 과잉 반응에 생각되는데 합법적인 AV의 유통은 비데륜을 통한 렌탈에 거의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메이커는 그 지도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비데륜은 「세라복」이나 「소녀」등 미성년을 나타내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규제했다. 여고생을 테마로 한 AV는 많은 메이커에 공통된 히트 상품이었기 때문에, 규제에 의해 각 메이커는 타이틀에 사용하는 용어의 선택에 당황하는 일이 된다.

 

미성년자 출연에 따른 비데륜의 규제


88-89년 우주기획, KUKI 등 24개 작품에 출연한 이토 토모미[伊藤友美] 가 15살 미성년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겨준다.

89년 미성년자였던 이토 토모미[伊藤友美] 출연 사건으로 소속사인 「마운트 프로모션」 사장과 메이커 4사의 사장, 감독이 체포되었다. 소녀의 실연령이나 체포자의 수로부터 해, 전년의 무라니시 체포 사건보다 이쪽이 중대한 것은 분명하다.

88년 11월, 경시청이 레이블명 ‘비디오 패거서스’의 제작사인 ‘스마일 기획’을 적발한다. ‘비디오 페가서스’는 무심사 시스루 비디오[[인디즈 비디오의 다른 말로 비데륜의 심사를 회피하고 불법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비디오를 가리킴]] 의 인기 리스트로 경찰은 이 회사를 이전부터 마크하고 있었다. 이 적발로 페가수스에 많은 모델을 알선하고 있던 소속사 “마운트 프로모션”도 수사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수사를 넣었더니 소속 모델인 이토 토모미가 15세였다는 사실이었다. 이토 토모미는 로리타적인 풍모·체형으로, 출연작의 대부분 세라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사건을 파악한 비데륜은 보도에 앞서 규제를 강화해 사건 발각 이후 세간에 제기될 비난들을 차단할 목적으로 앞서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과 무관하게 미리 미성년을 연상케 하는 표현을 봉인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특히 비데륜은 연루된 체포자를 심사 제외해야 함이 옳았으나 관련 메이커 가운데 우주기획, KUKI, 아테나 영상은 업계 최대기업이며, 비데륜에 대한 공헌도도 높았기에 이를 추방 권고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비데륜의 지나친 규제에 낳은 모순


비데륜 미성년 규제의 최대 피해자는 우주기획이었다. 우주기획은 실전 섹스는 고사하고 펠라치오까지 유사로 행할 정도로 비데륜에 가장 협조적인 메이커였다. 특히 미소녀, 여고생, 세라복과 같은 미성년 이미지를 최대 매물로 하였는데 비데륜에 의해 그만 발목이 잡힌 것이다.

경찰은 그동안 무라니시로 대표되는 실전 노선의 세력에 압력을 가하는 강경한 수사 체제를 취해 왔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실전을 부정하는 보수적 메이커에까지 영향을 미쳐버리며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만일 비데륜이 관용적 조치로 관련 메이커를 사면한다면 앞서 미성년자 출연으로 추방당한 무라니시 감독에 대한 탄압은 부당한 조치가 되어버린다. 심지어 무라니시 추방과 관련해 비데륜은 “18살 미만의 사람을 「성인 비디오」에 기용해, 적발된 제작자가 관여 제작한 모두 상당 기간, 심사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는 으름장을 각 메이커에 선포한 바 있었기에 곧 자기 부정이 되어버리는 모순인 것이다.

 

연쇄 유아 납치 살해사건과 무라니시의 복귀


범인 미야자키 방에 소장된 수많은 불법 비디오가 놓여있다. 이중엔 로리타 성인물도 있었다.

끔찍한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이 채수습도 안 되었는데 여아 4명이 연이어 살해당하는 참극이 발생한다. 일명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 인데 범인 미야자키는 살해한 여아를 식인까지하고 카메라로 촬영하는 등 유아 성도착증을 가진 극도의 싸이코패스였다.

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를 암시하는 듯한 이런 디스토피아적 만행들은 AV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게 만든다. 대중을 놀래킨 것은 산더미가 된 미야자키의 방의 영상이었다. 경찰이 압수했다고 여겨지는 비디오 테잎은 약 5800개였고 그것은 「대량의 애니메이션이나 어덜트 비디오」라고 전해져 격렬한 AV의 협박의 개시가 예감 되었지만, 이윽고 문제는 호러 비디오와 로리콘 비디오에 집중해 갔다.

미야자키 방에서 나온 호러 비디오 물 기니어 피그[ギニーピッグ]

여기까지의 상황으로부터 생각되는 것은, AV 억압을 목표로 하고 있던 경찰의 일부 세력의 시선이,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을 기회로, 다른 것에 이행 한 것이 아닐까라는 일이다.

한편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무라니시는 사전 통고도 없이 돌연 비데륜 측의 처분 해제를 받았다. 아동복지법위반에 의해 일자리를 쫓긴 남자가, 같은 종류의 사건에 의해 복직했다는 실로 기묘한 전개이다.

그것은 비데륜과의 사이에 어떠한 거래가 있던 것을 느끼게 하는 태도였지만, 당국의 단속 대상으로 호러와 로리콘이 클로즈 업 되고 있었다. 이미 무라니시는 집중 마크의 대상으로부터 떼어지고 있던 것은 아닐까?

만약 미야자키의 비디오 콜렉션에 대량의 AV가 포함되어 있으면, AV는 또 다른 역사를 더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AV업계에 있어서는 큰 행운이었다.

 

유아 납치 사건으로 인해 유해물 규제가 전환되다


90년 이후 유해물의 단속은 AV에서 만화로 옮겨가며 지자체가 주도하기에 이른다.

또 하나 주목 해야 할 것은, 미야자키 사건을 기회로 AV억압을 주도하는 모체가, 경시청으로부터 지방 행정으로 옮긴 것이다. 

AV의 적발 요인으로 여겨진 외설, 매춘, 미성년 따위란 명백한 위법성이 있었다. 하지만 호러 비디오의 문제점은 잔혹함, 불쾌함이나 반도덕적이라는 형사 처벌이 물을 수 없는 표현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경찰은 직접 직접 손을 대지 못하고, 대응은 각지방 자치체에 맡겨진 것이다.

미야자키 사건 후, 문제적 미디어의 감시는 경찰에 의한 단속으로부터 지방 행정의 「유해 지정」으로 크게 전환된다. 엄밀한 위법 요건에 따라 집행되는 형사수사에 비해 자치단체의 ‘유해지정은, 불쾌하다, 귀찮다, 교육상 좋지 않다, 라는 등의 추상적이고 개인적 인상에 따른 발동이 쉽다.대법원 판결의 보증수표를 얻어, 그 이후 자치체는 “유해 미디어”의 감시에 큰 힘을 쏟게 된다.

 

위기를 딛고 90년대를 맞이하다


84년 우주기획에서 데뷔한 하야미 히토미[早見瞳] 가 89년 컴백한다. 유사 섹스 연기밖에 할 줄 모르던 그녀 세대들이 이처럼 실전 노선으로 전향해 도전하는 것이다. 높은 몸값을 지닌 단체[單体] 급 배우들은 90년대 이후 손쉽게 실전 섹스로 이행한다.

오히려 90년 이후, 그들의 창 끝[矛先]은 AV로부터 다른 것으로 옮긴 것 같다. 90년 여름부터 전국 각지에서 관민 일체가 된 “유해 만화” 배제 운동이 개시되어 출판·유통에 대한 자숙 요청이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AV가 그들의 시선 밖에 놓여진 것은 다행이었다고 해야 한다.처음부터 체포라는 강경 방침으로 억압이 지속된 무라니시 때리기의 시대와는 당국의 대응은 사뭇 다른 형태가 된 것이다. 경찰에 의한 적발은 돌발적이고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자치체에 의한 “유해 지정”은 수차의 스텝을 밟은 후에 상품 배제가 행해졌다.

 

[이 칼럼은 후지키 TDC [본명 : 후지키 타다시]씨가 탈고한 성인 비디오 혁명사 [2009년, 幻冬舎新書] 를 바탕으로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다수의 의역과 오역이 있으므로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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