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비디오 역사 총정리18 개의 글 중 18 번째 글입니다.

80년대 전반기, 여명기


최초로 일본 AV가 등장한 80년대 전반기

주요 인물 : 코지타니 히데키 [小路谷秀樹] , 요요기 타다시[代々木忠], 타쿠치 유카리[田口ゆかり]

80년대 전반기는 후지키 TDC 씨가 설명하는 바 처럼 70년대 비디오 카메라의 도입에 따른 텔레비전 방송국의 약진이 시작되었고 이후 ENG 기법에 따른 기재의 경량화로 비디오 퀄리티가 대폭 상승하며 영화 관람객의 발길이 점차 뜸해진 시기이다. 이런 위기의식으로 일본 영화 제작사는 자극적이고 에로틱한 작품을 제작해 흥행에 사활을 걸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로망 포르노였고 추후 로망 포르노 제작 스텝들이 80년대 AV에 합류하기 시작한다.

80년대의 AV 흐름은 후지키씨가 정리한대로 코지타니[小路谷秀樹]와 요요기[代々木忠]로 대표되는 두 감독의 다큐멘터리 촬영 기법에 따라 기록 영화에 가까운 서사구조를 특징으로 전개되는데 특별히 기획된 연출이라기 보다는 단지 당시의 촬영 기재나 기법이 보도-시사에 주력을 두었기에 AV도 보조를 맞춘것이었다. 여명기란 이름답게 이 시기엔 체계가 잡히지 않았다.

또한 비닐책과 불법책 두 핑크잡지가 서민들에게 각광받으며 지하 문화를 형성한다. 이 비닐책의 인기 아이돌 타쿠치 유카리가 불법책을 거쳐 AV에 출연하면서 폭넓은 지지층이 AV에 유입되기에 이른다.

80년대 후반기, 확립기


일본 AV의 장르가 대부분 확립된 80년대 후반기

주요 인물 : 무라니시 토오루[村西とおる], 도요타 카오루[豊田薫], 코지타니 히데키 [小路谷秀樹], 쿠로키 카오리[黒木香], 토요마루[豊丸], 카와이 사토미[かわいさとみ], 아키모토 토모미[秋元ともみ]

80년대 후반기는 현재 AV 대다수의 장르가 확립된 시기인 만큼 반드시 주목해서 다뤄야 할 시기이다.

이 당시엔 AV가 서브컬쳐로의 확고한 지위가 갖추기 이전이라 AV와 연예계가 구분되지 않았고 AV 인기를 등에 업고 손쉽게 연예계로 진출하며 자신의 재량을 뽐낸 재인[才人]들이 많았다.

특히 일본의 페미니즘 열풍이 꺼져가며 성[性]에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런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여 제작사 우주 기획이 “미소녀 물” 을 만들어 화려한 이미지를 더해간다. 물론 이 미소녀들은 실전 섹스를 하지 않았다.

이런 흐름과 반대로 실전 섹스를 주장하며 음란한 이미지를 덮어씌운 반대 세력이 존재했고 그 선봉자가 바로 무라니시 토오루[村西とおる] 였다. 크리스탈 영상으로 대변되는 음란 여배우 진영은 실제로 여배우가 느끼고 음란하다는 환상을 각인시켜 AV를 좀 더 역동적이고 리얼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처럼 잘 나가던 AV는 중대한 문제에 부딪히며 난파될 위기에 처한다. 바로 무라니시 토오루로 대변되는 실전 노선 확대를 예의주시하던 경시청에 의해 발목이 잡힌 것인데 특히 80년대 말 버블경제의 말기적 사회 현상이 드러나며 이것이 AV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80년대는 AV의 확립기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지나친 확대노선을 경계하는 당국의 검열제제가 극심해진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90년대 초반, 버블경제기


버블경제로 침체된 90년대 전반기 일본 AV

주요 인물 : 무라니시 토오루[村西とおる], 아다치 카오루 [安達かおる], 이세린 타로[伊勢鱗太朗] , 이이지마 아이[飯島愛], 호시노 히카루[星野ひかる], 사쿠라기 루이 [桜樹ルイ], 사토 타이지[佐藤太治]

버블경제의 황금기가 끝나면서 이전에 확립된 미소녀 흐름이 이이지마 아이[飯島愛] 로 대표되는 TV 아이돌로 굳혀지며 매스컴의 커다란 반향을 얻기 시작한다. 이 때 80년대 버블로 자본을 움켜진 AV 제작사들은 저마다 인기 아이돌을 확보하기 위해 첨예한 경쟁노선을 달리는데 문제는 버블이 끝난 뒤였다.

무리한 투자를 버티지 못하고 문닫는 메이커가 늘어가고 가장 대표적인 제작사가 무라니시 토오루[村西とおる]가 세운 다이아몬드 제작사였다. 도산한 메이커의 판본은 “특가점” 으로 대변되는 불법 업자에게 팔려나갔고 AV에 일시적인 불황기가 찾아오며 위축될 즈음 그 틈새시장을 파고 든 신세력이 바로 셀 비디오였다.

비데륜이란 심사기구를 통과하지 않고 시장에 유통되던 셀 비디오는 무절제한 하드코어함과 얇은 모자이크가 음란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마이너 분야로 착실히 성장하며 강력한 경쟁세력으로 급부상한다.

여기에 셀 만을 소매로 취급하는 일명 “염가 판매왕” 이란 기업형 체인이 등장하고 버블로 망해버린 제작사 스탭들이 셀 비디오에 가세하며 90년대 전반기의 AV는 합법과 불법 사이의 불안한 외줄타기로 붕뜨기에 이른다.

번외로 이 시기엔 V&R을 세운 “아다치 카오루[安達かおる]” 사단이 등장하여 즉물적이고 변태적인 SM 다큐멘터리를 구축한다. 80년대 전반기의 다큐멘터리가 다분히 서사적이었다면 90년대부터 드라마적 요소와 스토리텔링 기법을 구사하며 개성이 강한 다큐멘터리로 이행되는 것이다. 이는 불황기로 몸살을 앓는 AV를 적셔주는 단비와도 같은 신조류였다.

 

90년대 후반, 발전기


셀 비디오의 출현으로 발전하는 90년대 후반기 일본 AV

주요 인물 : 도요타 카오루[豊田薫], 타카하시 가나리[高橋がなり], 모리시타 쿠루미 [森下くるみ], 코무로 유리[小室友里]

90년대 후반은 발전기라 칭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셀 비디오에 한정되는 용어일 것이다. AV는 대여점 중심의 렌탈과 소매업 중심의 셀로 분류되었으며 셀 비디오는 심사기구를 통과하지 않은 까닭에 대여점에 전시될 수 없었고 단지 불법적으로 도,소매상에 유통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90년대 전반기 전열을 가다듬은 셀 비디오의 반격이 거세지며 이른바 메이저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그 첫 단추가 SOD의 창설이었다. 타카하시 가나리[高橋がなり] 가 세운 SOD는 매직 미러호로 상징되는 참신한 소재로 대중의 환심을 사며 셀 비디오의 어두운 이미지를 희석시키는데 성공한다.

특히 이 시기부터 디지털 모자이크 흔히 데지몬이라 일컬어지는 모자이크의 계량이 주목할 만하다. 셀 비디오가 처음 시도한 이 도전은 수요층의 요구에 맞게 점차 가다듬어지고 이후 게키우스[激薄]란 매우 희미한 모자이크를 만들어 시중에 보급하는 등 AV의 표현수위는 점차 원색적이면서 과격해진다.

 

00년대 초반, 도약기


커다란 자본을 등에 업고 도약하는 2000년대 일본 AV

주요 인물 : 아오이 소라[蒼井そら], 카메야마 케이지[亀山敬司], 오이카와 나오[及川奈央]

00년대 전반기 AV 역사에 획기적인 사전이 발생한다. 바로 비데륜의 몰락이 그것인데 30년 가량 AV를 주름잡던 자율심사기구 비데륜의 몰락은 이미 90년대 셀 비디오 발전과 함께 예견된 일이었다.

후지키 TDC는 비데륜의 독과점이 무너진 두 가지 요인으로 첫째 비데륜이 보수적인 심사기준을 내려놓지 않고 강요한 점 둘째 계열사 이탈에 따른 자율 심사 기구의 확대를 꼽는다. 후지키는 SOD가 비데륜에 대항해 세운 메디륜이 CSA란 협동조합으로 발전한 경위를 매우 눈여겨본다.

어떻게 일 정부가 SOD의 손을 들어주었는지 차치하더라도 CSA가 정식 인가를 받아 활동을 한 뒤부터는 비데륜의 권위가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애시당초 비데륜은 사설 단체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무법자적 단체였기에 산소 호흡기로 겨우 연명하던 비데륜의 수명은 이로서 끝이 났다.

비데륜의 몰락은 중국의 왕조 교체에 비유될 정도로 AV 유사 이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은 AV의 주도권을 셀 비디오가 완전히 장악하였음을 의미하며 이후부턴 대규모 자본을 동원한 SOD와 호쿠토[北都] 가 심사권한부터 매출에 이르기까지 양강 체제로 독식하게 된다.

다만 이것이 AV에게 유익한 일인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애시당초 일 정부가 CSA란 심사기구를 협동조합으로 만들었음은 앞으로 정부가 AV에 공식적으로 개입하여 표현수위부터 작품의 진행까지 철저한 검열상대로 놓겠다는 엄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렌탈계 -셀계 제작사 세력도


렌탈과 셀이 대립하는 일본 AV의 판세 구조

출처 – 미소라 세기 발전, www.darkserika.com/1664

물론 이 세력도가 2019년 현재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아니다. 다만 그 본질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기에 AV 제작사의 본래 세력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렌탈과 셀의 양대 진영은 어떠하였는가 그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어 첨부한다.

 

번역을 하면서 느낀 소회


1970년대부터 2009년에 이르기까지 근 40년의 AV 역사를 300페이지 안 팎에 서술한다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일 것이다. 저자 역시 맺음말에서 아쉬움을 토로했듯이 행간에 빠져있는 여러 역사적 진실과 사건이 더러 묻혀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AV를 가십거리를 위한 포르노로 한정짓는 것은 매우 잘못된 시각이다. 후지키씨가 설명한 바대로 밀레니엄 시대로 접어들며 동[東]에서 서[西]로 이른바 문화 역전 현상이 벌어지며 AV가 커다란 경쟁력을 지닌 문화 컨텐츠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제 일본은 좋던 싫던 자국의 문화를 AV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처럼 AV는 서민이 쉽게 향유하며 해소할 수 있는 소비 문화인 동시에 유흥 문화다. 다만 문제는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AV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유흥거리로만 받아들이고 도통 서민들이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는 점에 있다.

8-90년대 까지는 AV는 확실히 소비 문화란 측면이 더 컸기에 “일단 찍기만 하면 팔린다” 는 얘기가 AV업계에 불문율 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후지키씨가 지적한 바대로 대기업의 렌탈 대여점 시장 진입으로 인해 1000-1200엔 하던 가격이 갑자기 2,300엔대로 주저 앉았고 이후 TSUTAYA 같은 대기업의 성장으로 영세 대여점들이 더욱 위축되기에 이른다.

렌탈계 제작사가 셀계 제작사에 도태된 요인으로는 물론 연출의 창의성에 뒤진 요인도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렌탈계 시장이 침체되면서 이전과 같은 매출을 올릴 수 없게 된 경제적인 압박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AV를 구입하려는 소비 심리가 전방위로 위축되고 불법복제까지 인터넷에 판을 치면서 과거 렌탈계 제작사가 고민을 셀계 제작사도 끙끙 앓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AV는 공짜로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란 이상한 관념들이 퍼지면서 AV 메이커의 매출은 매해마다 곤두박질치며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 점이 옮긴이인 필자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다.

후지키씨가 09년에 집필할 당시엔 심사기구를 두고 규제하려는 정부의 압박 및 표현의 자유를 문제삼았으나 현재 AV가 처한 가장 큰 위기는 정부의 규제보단 앞서 얘기한 불법 복제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AV 메이커들이 IPPA를 조직해 지적재산권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고 본다.

09년 이후 AV 업계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을 이 한정된 지면에 일일히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역사가 정-반-합의 그래프를 그리며 변화했음을 상기할 때 향후 AV의 방향이 어두울 것인가 하면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약 263 페이지 가량의 분량 중 후지키씨가 밝힌 주석 부분은 지면 관계상 번역을 생략했음을 밝힌다. 또한 촬영기재의 발전 상황 같은 정황상 읽는 이의 가독성을 떨어트릴만한 지면은 과감히 번역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면에 없는 AV 표지와 각종 배우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인 필자가 첨부한 것이니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부디 댓글로 의견을 고지해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허락도 없이 글을 개제한 필자의 잘못을 후지키씨에게 사과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 

 

2019년 1월 19일

AV 스토리

 

해당 시리즈 살피기<< 성인 비디오 역사를 종결하면서 [저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