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미 유마 Re Start23 개의 글 중 20 번째 글입니다.

사실상의 은퇴 무대, 마스캇츠 졸업식

마스캇츠 디지털 앨범 『OECURA MAMBO』

마스캇츠는 내게 정말로 중요한 존재로 노력하는 힘, 싸우는 힘, 목표를 주고 있던 것입니다.

(라스트 라이브 스테이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선다!)

그 목표가 없었다면……. 분명 괴로운 항암 치료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수술을 가까이 둔 어느 날, 멤버로부터 종이학과 학을 접고 있는 사진이 붙여진 보드가 병실에 도착했습니다.  맴버들의 진한 사랑이 느껴지는 선물을 바라보며 2월부터 시작된 파이널 투어─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매우 분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 힘이 되었습니다.

수술 직후는 스스로 걸을 수도 없는 상태였는데, 라이브 스테이지에 노래하고 춤을 추고 싶다고 병원의 선생님에게 상담했을 때에는 말도 안 된다고 기함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해보겠다!」라고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수술 전은 라스트 라이브 뿐만이 아니라, 그 앞에 열리는 투어의 나고야나 오사카의 스테이지에도 서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내 병을 알고 있던 것은, 아주 일부의 멤버 뿐이고 리허설 날에, 자신의 입으로 모두에게 설명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것입니다만, 마지막 라이브에 집중하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면, 감히 사실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투어는 마스캇츠의 집대성으로 멤버에게도, 팬에게도, 해산을 위한 마지막 피날레는 무척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1회차의 항암 치료를 끝낸 뒤, 맛코이[マッコイ] 씨로부터

중반으로부터 등장하는 것이 좋지않아?

아닙니다. 처음부터 무대에 서고 싶어요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라고 전했습니다. 나로서는, 이 날을 목표로 해 노력해 왔고, 이 날만은, 어떻게든 처음부터 끝까지 스테이지에 서고 싶었습니다. 스탭들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만,  맛코이[マッコイ] 씨도 납득해 주었습니다.

마스캇츠 졸업식 리허설
리허설에 참여한 아사미 유마의 모습

마스캇츠 졸업식 리허설

내가 출연하는 것은, 마이하마(치바현 우라야스시)에서 4월 6~7일의 이틀간 행해진 해산 라이브의 최종회로 전날 6일에는 발길을 옮기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무대에 가는 것으로 이상한 주목을 끌어, 불필요한 잡음을 넣는 것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민한 끝에, 아무래도 모두가 노력하는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몰래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맞이한 4월 7일, 드디어 라스트 라이브, 마지막 날. 불안이 없었을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체력이 끝까지 버틸지 보증도 없지만, 파이널 투어나 전날의 스테이지에 오르지 못한 분함과 병에 대한 불안 따위 등 모든 것을 부딪칠 생각으로, 잔뜩 기합을 넣었습니다. 

유마짱~~!!!

어서와~~!!

팬 여러분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가슴이 뜨거울 정도의 성원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눈물이 흘러넘쳐 멈추지 않습니다.  

(다녀 왔습니다! 겨우 돌아올 수 있었어! 여러분들 기다리고 있어 주어 고마워요)

 

항암 치료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

스테이지에 서면서, 가끔 상처 자국의 아픔이 신경이 쓰일 수도 있었습니다만, 그런 일보다, 자신이 지금 스테이지에 서 노래해 춤추고 있는 것이, 어쨌든 기뻤습니다. 끝까지 이 경치를 보고 있고 싶다. 쭉 노래하고 있고 싶어서 마스캇츠의 모두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끝이 오는 것 같은거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다만 지금 이 시간이 순수하게 즐거워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즐겁다! 라이브는 역시 최고! 노래해 춤추는 것이, 이렇게도 즐겁다니……. 이것으로 끝이라니…..)

video
라스트 공연 『ABAYO』

그리고 라이브도 후반에 접어들어, 라스트 노래의 『ABAYO』. 에비스 마스캇트 전원이 모여 노래하는, 처음의 『ABAYO』입니다. PV에도 투어에도 참가 할 수 없었던 내게 있어서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의 『ABAYO』

좀 더 모두와 함께 노래하고 싶었는데 좀 더 춤추고 싶었는데…이것으로 모두와 정말 마지막이라니….

涙流す時じゃない 今は (나미다 나가스 토키자 나이 이마와)

  • 눈물 흘릴 때가 아니야 지금은

何かがまた始まるから  (나니카가 마타 하지마루카라)

  • 무언가가 다시 시작하니까

ポケットに2つ入れた真白な夢 (포켓토니 후타츠 이레타 마시로나 유메)

  • 주머니에 집어넣은 2개의 새하얀 꿈

気づけばホラ 七色染まった (키즈케바 호라 나나이로 소맛타)

  • 깨닫고 나니 은은한 일곱 가지 빛깔로 물들구나

그 순간, 무대 주변이 가사처럼 7색의 야광으로 일제히 메워진 것입니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때가 멈추어 버린 것 같은 거대한 감각에 마치 꿈 속에 있는 것 같아, 너무 감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에게, 언젠가 최고의 경치를 보여 줄거야

맛코이[マッコイ]씨가 우리들에게 던져 준 말이 갑자기 되살아나 왔습니다. 그 광경은 평생 잊지 않습니다! 『ABAYO』 의 한 구절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アバヨアバヨアバョ de (아바요 아바요 아바요 de)

  • 안녕 안녕 안녕 de

桜散って行く (사쿠라 칫테이쿠)

  • 벛꽃이 흩어져가는

アバヨアバヨアバョ de (아바요 아바요 아바요 de)

  • 안녕 안녕 안녕 de

笑顔全快に キス チィ~ス! (에가오 젠카이니 키스 치스)

  • 웃는 얼굴 완쾌로 키스치~스!

해산하는 마스카츠의 라스트 싱글답게 팬들에게 감사를 담아 마지막을 전하는 후렴 부분입니다. 라이브로부터 몇 일후, 트위터에서 처음으로 눈치챈 것입니다만, 보통이면 「웃는 얼굴 전개」라고 될 것입니다만, 「완쾌」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의 캐치프레이즈가, 건강함이었기 때문에, 이런 가사로 한 것일까? )

스탭들에게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만, 나의 병을 생각해 “완쾌”로 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뜻하게 맞이해 준 마스캇츠의 동료들. 투병중인 나에게, 어떤 형태로에서도 스테이지에 서게 한다고 해 준 맛코이씨. 멋진 연출을 해 준 스탭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없을 정도 무대에서 분위기를 살려 준 팬 여러분. 5년간 지지해 주셔, 감사합니다. 나에게 있어 마스캇트는, 꿈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렇게 행복했던 시간은 없습니다. 팬의 모두는, 나의 원동력으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어 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노력할 수가 있던 것입니다.

재개된 2차 항암 치료

2차 항암제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었습니다.

라스트라이브도 폭풍처럼 지나가 저는 투병생활로 돌아왔습니다. 달에 1번꼴로 5차례의 항암 치료가 예정되어 라이브의 1주일 후에는, 2차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첫번째 항암제”TC”가 몸에 맞지 않아 2회째부터는 알코올 없는”DC”를 투여했지만, 부작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증상에 의해 사용될 수 있는 항암제의 종류나 방법은 여러가지이고, 부작용의 증상도 사람마다 각각이라고 합니다.

(아…… 이거야…… 전과 같아)

병실에 들어가 링겔을 놓으면, 약의 독특한 냄새가 입 안까지 퍼져 옵니다. 그 뭐라고도 말할 수 없는 기분 나쁨을 지우기 위해 사탕을 빨거나 해 속여 보았습니다만, 위안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부작용의 증상은, 약을 넣은 당일부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토악질은 반드시 따릅니다만, 매회 기분 나쁨의 정도가 다르고, 구토를 멈추는 약을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구토가 덮쳐 와도 토할 수가 없습니다. 구토외에도 권태감, 관절통 따위가 계속됩니다.  물론 식욕은 있을 리도 없습니다. 때로는, 열이나 습진, 역류성 식도염에 걸리는 일도……. 그만큼 강한 약이, 자신의 신체에 스며들고 있음을 체감했습니다.

<<투병 메모/DC 2회차의 부작용>>

음식이 전부 물에 잠긴 것 같은, 엷은 맛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랑니 부분의 잇몸이 붓는다. 아파서 밥을 먹을 수 없다.

퇴원 직후는, 심장의 두근거림이 위험하고 괴로웠다.

1주일 후, 스트레스 때문인지, 음식의 탓인지, 위경련에 걸렸다!

굉장한 아픔이 위(명치)에. 너무 괴로워서 견디기 힘들었다.

포만감을 모르겠다. 이상해

변이 나오지 않는다. 변비 기색

손이나 전신이 건조해진다.

머리와 이빨이 아파서, 목의 림프액도 부어 아프다.

미각 변화도 일어납니다. 다른 요리를 먹어도, 모든 것이, 물로 씻은 것 같은, 맛이 나, 좋아했던 물고기도 일식도, 냄새가 나는 것만으로 맹렬한 구토에 습격당합니다.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던 화장수나 크림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버렸습니다. 항암제 치료를 받을 때에 느끼는 화학적인 냄새와 닮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신체가 기억하고 있겠지요. 세제나 유연제의 냄새에도 민감하게 되었습니다. 세탁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그만두어!」라고 외쳐 버린 적도 있습니다.

알코올에 대한 거절반응도 심해 졌습니다. 특히 나의 경우, 원래 술에 약했고, 1회차때에 알코올을 섞은 항암제 「TC」를 사용한 공포가 남아 있습니다. 손을 알코올 소독하는 것은 괜찮은 것입니다만, 술을 마시거나 체내에 거두어 들이는 것은 정말로 무섭다고 느껴 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투쟁

부작용은, 눈에 보이는, 신체에 나타나는 증상만이 아닙니다. 항암 치료를 받고 나서 3주간을 지났을 무렵으로부터, 「골수 억제」라고 하는, 항암제만이 가능한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백혈구나 혈소판의 수치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균에 대해서 저항력이 없어져 버린다. 수치가 나쁘면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없기도 하고,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감염 예방이 특히 중요합니다. 작은 상처에서도 피가 멈추지 않는 것도 있으므로, 부엌칼을 사용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감기에 걸리면 폐렴에 걸릴 우려도 있습니다. 나의 경우, 이 골수억제가 강하게 발생해서, 백혈구의 수치를 올리기 위한 주사를 몇 번이나 맞았습니다.

한층 더 부작용과는 별도로, 자궁과 난소를 골라낸 나는,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되지 않게 된 것이기 때문에, 갱년기와 같은 증상도 나옵니다. 불면이나 심장의 두근거림, 핫 플래시의 증상은 지금도 괴롭습니다.

사람과 조금 회화를 한 것 뿐으로 의자가 젖는 만큼 땀이나오거나 집안이 춥다고 생각해 옷을 많이 껴 입음을 하면, 직후에는 갑자기 땀이 나오거나……. 컨트롤이 어렵고,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항암 치료로 전신에 탈모증상이 나타납니다. 두발 뿐만이 아니라, 눈섭이나 속눈썹, 콧털…… , 전신의 모든 털이 빠졌습니다. 손톱도 무너져 변형도 됩니다. 기분의 낙차도 심각해져서, 어머니와 충동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

항암 치료 기간 동안 어머니는 계속 옆에 있어 주셨어요.그렇지만 나는 약의 부작용으로 초조하거나, 떨어져 나가거나 반복해서…. 무심코 격렬한 어조로 역정을 내버려 반성하는 것이 가끔 있었습니다.

시끄러워 이 쿠소하게 [クソハゲ, 노인 비하 표현]야!

어머나, 사야카한테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너도 대머리 아니야?

나는 대머리가 아니니까! 치료가 끝나면, 또 나 와

그렇지만 지금은 대머리잖아? 마치 아저씨 같다고

우리 모녀의 대화는, 서로의 신뢰 관계 속에 장난치고 있는 것 같은 것으로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주는 어머니의 덕분에, 심각한 상황을 웃어 버릴 수가 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아이로 태어나서 나는 정말로 좋았습니다…….

 

생활의 어려움과 이사

소라와 우리집에서, 마스카츠의 졸업앨범을 보고 분위기가 살아났습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해서 직면한 것은 생활적인 문제였습니다. 맨션의 계약일이 임박했던 적도 있습니다만, 병으로 무수입이 되어, 언제부터 일을 재개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사실은 이대로 같은 집에 살고 싶지만, 월세가 비싸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부작용도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 중 이사는, 나에게 있어 허들이 높은 큰 과제였습니다.

데뷔 이후, 나는 쭉 매니저의 차로 이동하고 있었으므로, 전철을 이용했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만, 지금은 부동산 소개소 순회나 전철을 타지 않으면 안됩니다. 혼잡 속에서, 심장의 두근거림이나 헐떡임을 해, 서 있는 것조차 겨우 버텼던 적이 많았습니다.

사실 움직일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항암제의 링겔을 하면서 병실에서도 부동산 정보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사 작업을 끝냈을 때, 가구도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서 생각에 빠졌습니다. 2년간, 자신이 살고 있던 방을 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이 교착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돌연 무수입이 되어, 어떻게 일해 가야하지? 무섭다. 너무 무섭고 불안해서 앞으로 어떻게 되어 버리는 거야? 엄마도 일을 은퇴했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 의지하는 사람이 없다….

깨달으면, 그런 불안과 공포에 습격당해 울고 있었습니다.  이 방과도, 지금까지의 자신과도 작별이었습니다. 벽에 손대면서 「안녕. 감사합니다」라고 작별을 말했습니다.

이사의 스트레스나, 생활의 변화도 있어, 이 시기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낙담해, 마음이 가라앉음은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은 나날이 계속된 것입니다.

어느 날, 병원에 병문안 하러 온 어머니의 가방에 구인잡지가 들어가 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내가 일할 수 없으니까 일하려고 하는구나)

가슴이 괴로워졌다. 병이 들 때까지의 나는, 가족의 중심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내가 병이 들어, 일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지금, 연로한 어머니가 어떻게든 하려고 해 주고 있습니다.

유니크로에 어머니와 쇼핑하러 나갔을 때, 계산하러 가면 어머니가 「내가 사 주네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요즘 몇 년 사이, 내가 쭉 송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어머니에게 뭔가를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어머니에게 응석부린다고 하는 일을 잊고 있던 나는, 오랜만의 감각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간병만으로도 벅찰텐데, 돈까지 걱정을 시켜 버려, 미안해요 엄마…)

정말로 미안하다고 생각해서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건강하게 되어, 가족을 유지하는 자신으로 돌아오고 싶다. 그렇게 바랐습니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고향 친구들과 오랜만에 재회했습니다. 옛 추억에 잠겼어요

가혹한 투병 생활로 당황한 것은 시간의 사용법이었습니다.  16세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 쉬지 않고 일하고 있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사용법을 알 수 있지 못해서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병과 싸우는 것이, 지금의 나의 일로, 참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가급적 움직일 수 있을 시간이 있으면 일하고 싶다, 라고조차 생각해, 부업을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괴로운 현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넘기 위해서 머리에서는 즐거운 일을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의 항암제 치료가 시작되면, 당분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리므로, 하고 싶은 것을 그 앞에 해 두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저 사소한 일이나, 작은 목표라도 즐거운 일을 생각하기 위해. 수예, 기타 연주, 정원…..컨디션이 좋을 때에는 홀로 가라오케나 고양이 카페에도 갔습니다. 그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는, 매우 행복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요리도 적극적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거의 일식 밖에 만들지 않았던 것입니다만, 미각 변화에 맞추어 양식에도 도전했습니다. 

8년만에 유카타를 입어 친구와 불꽃을 보러 가거나 소원하게 되어 있던 친구에게도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 기뻤던 것은, 현지의 친구의 집에 가거나 동창회에도 출석할 수 있던 것입니다. 중학교 이래 만나지 않았던 아이에게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옛날 그대로, 모두 전혀 변함없구나~. 고향이라는 것은 이렇게 즐거워)

병이 들지 않으면, 어쩌면 실감 할 수 없었던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신체는 괴로웠지만, 정말로 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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