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리 마이

-발레리나를 포기하고 생계형 AV배우가 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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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리 마이는 2012년에 데뷔하여 현재까지 활동 중인 AV 배우이다. 무명의 기획 배우를 거쳐 현재는 스트리퍼를 겸업하고 있으며 프로 발레리나의 경력을 살려 상당 수의 작품들이 테크닉과 표현력을 중시하고 있다. 

 

프로 발레리나로 활동한 재원


그녀가 소속되었던 스타 댄서즈 발레단

미오리 마이는 스위스 로잔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장래가 촉망된 발레리나였다. 조모와 모친도 발레를 배웠고 모친은 그녀를 2살때부터 클래식 발레를 배우게 만들었고 초, 중, 고등학교 내내 그녀의 꿈은 오직 프로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는 발레를 전문으로 가르친 예고였는데 졸업하자마자 18살 마침내 프로가 되었다. 그리고 로잔 콩쿠르에 참여하며 국제대회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게재된 페이지를 보여 주었다. 본명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그녀였다. 콩쿠르에서의 상연 목록이 취재되거나 특집 페이지로 기술적인 지도를 하거나와 일본을 대표하는 발레리나로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었다 -나카무라 야스히로->>

 

발레를 특기로 역동적인 몸의 표현을 VISUAL POSE BOOK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했다.

” 상하이 세계 박람회 일본 대표로 뽑혀서 클래식 발레를 추었습니다. 선발 인원은 30명이었고 나는 위에서 3번째였다. 프로가 되겠다고 결정한 뒤부터 초등학교때부터 쉬지 않고 연습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하루 평균 10시간을 연습했고 여러 콩쿠르에 입상하여 최고는 일본 전국 6위까지 해보았네요 현역때는 다리를 올려 기둥에 묶어서 잠들곤 했습니다 “

그녀는 학교에서 항상 상위클래스였고 주연을 연기했다. 졸업 후엔 추천된 프로 발레단에 입단하여 월 수입은 3개월에 50만엔을 받고 생활했다.

 

남자를 너무 밝혔던 모친과 가정사


이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갖춘 그녀는 대체 무슨 이유로 AV배우가 된 것일까? 사연은 몹시 복잡했는데 모친의 잦은 바람기에 따른 두 번의 이혼과 경제적 어려움이 제일 컸다. 발레리나였던 모친은 은퇴 후 자신의 꿈을 장녀인 마이에게 물려주었다. 2살 무렵부터 유명 스쿨에 보낼 정도로 자식교육에 열성이었지만 특유의 바람기가 자식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혼 때문에 그녀는 초등학교때까지는 교토, 중학교때는 도쿄 시부야로 이사를 다녔다. 재혼한 의붓아버지는 세탁소를 운영했고 배가 나오고 머리가 벗겨진 추한 몰골의 중년 남성이었다. 다만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한 부자였기에 돈냄새를 맡은 모친은 이 남성과 재혼하게 된다.

다만 의붓아버지의 자식 중 장애인이 있었는데 의붓딸을 간호해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인 것인지 또 바람을 저지르게 된다. 재혼가정이 평온했던 것은 불과 2-3년이 전부였다.

의붓아버지는 이런 불륜을 저지르는 모친을 감시하며 불안에 떨어했는데 하루는 탐정에게 부탁해 모친을 감시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호텔에서 어느 남성과 나오는 모친을 발견하게 된다. 의부는 마이에게 모친의 불륜증거를 보여주며 광분해했고 결국 이 모녀를 집에서 내쫒아버리기에 이른다. 물론 위자료 한 푼도 없이 빈 몸으로 나온 것이다.

 

경제적인 빈곤으로 꿈을 포기하다


이 후 모친은 마치 제 세상을 만난 양 남자를 품으며 자식들 곁에 오지 않았다. 결국 마이는 교제하고 있던 남자친구 집에서 동거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이 때 처음으로 남자를 알게 되었다고 전한다.

” 교제하고 있던 남성은 21살의 미용사로 잘생겼기 때문에 사귀었다. 그 사람이 첫 상대였고 동거를 시작하고 나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매일 매일 섹스를 했습니다. “

그녀는 17살 로잔 콩쿠르에 참가하면서 200만엔을 지불해야했고 여기에 여동생의 사립 고교 학비와 의부에게 집을 쫒겨난 것이 합쳐져 가계 생활은 이미 파탄이 나있었다. 

” 저 고등학생부터 메이크업을 했습니다. 어머니한테 마스카라를 빌리기 위해 파우치를 열었더니 “쥰코” 라는 명함이 나왔어요 무엇일까 궁금해서 검색해봤더니 “유부녀 출장 마사지” 였다. 그렇게 돈이 궁하다는 것을 알고 쇼크를 받았습니다 “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자 마이는 스스로 캐바양[캬바쿠라등에서 일하는 접대부] 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된다. 집세[[일본 도쿄의 집세는 살인적인 수준임을 감안해야 한다]]와 여동생 학비, 발레 레슨 비용 등을 생각하면 한 달에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침 9시부터 18시까지 연습하고 20시부터 새벽5시까지 캬바쿠라에서 일한다. 대단히 빠듯한 생활이나 젋음으로 극복할 수 밖에 없었다.

“발레는 부잣집 아가씨들이 많이 합니다. 저는 특별하게 가난했었죠 그래서 해외에 가고 싶었습니다. 발레단은 곧 그만두었고 돈을 모으려고 악작같이 일했다. 어머니를 따라하며 풍속에 종사했어요 출장마사지던지 소프로 일하면서 돈이 생기면 스위스나 독일, 프랑스에 가서 오디션을 볼 계획이었죠 그러다 한 발레단 셀렉션에 합격했지만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포기하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끝인 거에요 “

한 때 성공을 위해서 달려왔던 이 지독한 연습벌레는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압박과 경제적 문제가 겹쳐지며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검증된 능력을 지녔지만 주변에서 그리고 가족에서 갖가지 암운이 겹치면서 생계를 위해 캬바쿠라에 나가며 자신의 몸을 파는 접대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모친에게 물려받은 남성 편력증


발레단에 소속된 프로 솜씨답게 관절을 꺾거나 다리를 찢는 등 극도의 유연함을 바탕으로 한 AV를 촬영했다

” 뭐 풍속을 시작한 뒤부턴 지독한 야리망[[한국어로 걸레]] 입니다. 경험한 남자의 수는 21살까지만 4명이고 발레단에 나와 풍속을 하게 된 이후 부터는 1년에 100명 이상 받은 것 같습니다. 손님으로 좋다라고 생각이 들면 섹스프렌드가 되어 좋을대로 해버리고 돈은 받을때도 안 받을 떄도 있었네요 단순한 놀이입니다”  

발레를 단념한 21살, 그녀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막막했고 자신의 특기인 몸을 사용해 캐바양이 되었다. 물론 남자도 좋아했기에 이후엔 AV배우까지 생각이 미쳤다. 이후 스스로 소속사에 응모를 해 자신의 의지에 따라 AV를 찍게 되었다.

AV 배우가 된 것은 2012년부터이고 이름 없던 무명시절엔 죄다 강간당하는 역할, 도촬물에 집중되었다. 한 동안은 이런 최하층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그녀는 보통 AV에 출연하고 싶다고 소속사에 호소했으나 몇 개월이지나도 도촬물만 맡기니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미오리 마이라는 예명을 얻게 된 것은 반 년 뒤 소속사를 옮기고 나서이다.

”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발레를 하였고 몸의 전부를 사용해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싶습니다. AV 여배우로 유명하게 되고 싶습니다 “

그렇게 일본을 대표했던 전도유망한 이 발레리나는 AV 배우가 되었다. 여전히 유명해지고 싶다는 꿈을 간직한 체 말이다. 그녀의 여동생은 매일 남자친구와 놀러다닌다. 문제의 모친은 여전히 남자를 바꿔가며 얼마 전엔 새로운 자산가의 남자친구를 만들었다. 모친은 가까운 시일내에 3번째 결혼식을 올릴 참이다.[[당시 인터뷰 시기는 2014년도임]]

 

현재 근황


그녀는 같은 AV배우인 무토 츠쿠미[武藤つぐみ]와 2인 1조로 댄스 그룹을 결성하기도 하였고 로쿠쟈[[ロック座, 참고로 저 로쿠쟈는 AV 배우들이 많이 거쳐간 곳이기도 하다. S1의 오자와 마리아 그리고 우에하라 아이가 은퇴 후 잠시 머물었다]] 에서 스트립 걸로 활약하고 있다. 전문 훈련 없이는 소화하기 어려운 자세가 많은 만큼 유연한 장기를 살려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 내용은 『名前のない女たち 貧困AV嬢の独白, 中村淳彦 著, 宝島社』 를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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