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자키 에미리 -자기 현시 욕구를 위해 AV를 찍은 여인-

오카자키 에미리는 재일 교포 출신의 2011년 MUTEKI에서 데뷔하여 2016년에 은퇴한 배우다. 모델일을 계기로 지인의 소개로 AV에 입문하게 되었고 아이디어 포켓에서 전속 배우로 데뷔 후 kira kira에서 오네갸루 스타일로 선회하였다. 이후 키카탄을 거치며 무수정 작품까지 촬영하는 등 AV의 모든 과정을 거쳐간 배우이다.

 

조선인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집안 배경


카나카와 현 출신의 오카자키 에미리는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이다. 구체적으로 부계의 고향이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그녀가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혼혈이란 사실은 트위터에서 공공연히 밝혀왔던 사실이다]]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인물인데 [[기타노 다케시 주연의 ‘피와 뼈’란 영화가 생각난다. 일본에 돈을 벌러온 조선인이 주변의 멸시와 편견 끝에 정신적으로 타락해가는 줄거리로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것도 에미리의 아버지와 공통적이다]] 그는 결혼 전부터 애인과 자식이 있었고 이를 숨기고 결혼하여 에미리를 낳은 것이다. 이런 정신적 모멸감과 누적된 폭력, 가부장적인 기질로 인하여 모친의 성격은 점차 히스테릭하게 변해갔다.

그러가 중학교 3학년 부친의 폭력이 극에 달하여 모친의 안면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모친의 입술로부터 이빨이 날라가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기에 이른다. 이후 모친이 가출하게 되었고 부친도 성격이 더 과격해지며 사실상 집안의 수입은 전무한 상태가 되었다[[모친은 에스테틱을 부친은 음식점을 경영했다. 해외여행도 자주 갈 정도로 유복한 가정이었으나 가정이 파탄나면서 점차 가난해진 것]] 

 

살기 위해서 유흥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정신질환을 앓는 장애인이다.

이처럼 집안이 순식간에 붕 뜨게 되자 학비와 생활비를 벌 요량으로 고교 1학년[[일본은 15살부터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부터 캬바쿠라에 취업하게 된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와 16시에 학교로부터 돌아와 메이크 업을 하고 머리를 가다듬은 다음 출근을 한다. 영업은 심야 2시까지이며 아침에 돌아가 쪽잠을 자고 다시 학교에 나간다. 

이런 과도한 스케줄은 당시 15살이던 에미리에겐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고 자살을 여러차례 고민할 정도로 정신적인 붕괴는 극에 달해있었다.

“부친은 싫습니다. 언제 이성을 잃을지 모르기 때문에 안색을 엿보는 생활이었고 여자니까 얼굴을 때리지 않는 대신에 머리라던지 배라던지 때립니다. 이유는 단순히 차를 흘렸다던가 기분이 나쁘던가.. 그런 일로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성격이 급한 것이지요”

누적된 부친의 폭력과 양육 방치로 인해 에미리도 가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친과 같이 생활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모친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정상이었던 모친은 가정폭력에 시달린 끝에 히스테릭이 폭발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도 정상이 아닙니다.. 장애자 수첩도 지니고 있구요 고교생때의 수입을 월 40-50만엔 사이로 집세와 식비, 학비 등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많지가 않았다. 최악인 것은 어머니가 쇼핑 중독이 되어버린 것이죠 집에 엉망진창 택배가 도착한다. 대인 공포증이 생겨서 집에선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게 되어버렸고 인터넷에서 굉장한 양의 쇼핑을 한다. 지금도 병은 낫지 않고 있지만… 어쨋든 어머니는 좋아하기 때문에 조금씩 돈을 드리고 있네요..”

<<다행히 에미리의 손목에는 칼로 그은 흔적이 없었다. AV 배우나 풍속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대체로 심각한 가정 붕괴를 겪은 경우가 많아서 이런 자상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담담하게 현실을 말하는 그녀에게는 그러한 상처는 없었다.. -나카무라 야스히로->>

 

어머니와 동반자살을 시도하다


그녀의 모친은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은체 일절 밖으로 나오지않고 텔레비전이 있는 쇼파에서 앉아있으면서 자버리는가 하면 스마트 폰으로 쇼핑을 하고 후회하면 바로 자해를 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집안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기 마련이었고 심지어 흥건한 피에서 잠을 자버리기까지 하였다.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면 도망쳐버립니다. 자해 상처가 너무 심각해서 경찰이라던지 응급대원이 오면 도망칩니다. 그리고 저를 향해 고함을 지르지요”

어느 아침, 또 피투성이가 되어 넘어져 있는 모친이 있었다.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자신과 어머니가 사라져, 두 사람 모두 지옥으로부터 해방되면, 굉장히 편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엄마 함께 죽자..”

모친을 일으켜 이렇게 말했다. 모친은 수긍했고 시간 없고, 돈도 없고, 집에 돌아가면 자해로 피투성이가 된 어머니가 있고. 이제 에미리 자신도 머리가 이상해져 버려 동반 자살 결심을 굳히게 된다. 그렇게 연탄가스를 마시며 죽음을 기다리던 찰나에 불행 중 다행히도 근처에 살던 친구가 발견한 끝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 그러니까 전 죽는다던가 그런건 괜찮아요 어차피 그 때 죽어있었던 것이니까요 죽음에 대해 공포같은 것은 일절 없다 (하하) “

 

AV를 입문하게 된 동기


MUTEKI에서 데뷔 이후 아이디어 포켓에서 전속배우로 활약한다. 전속배우가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품성이 입증되었다는 증거이며 인기가 상당했음을 반증한다. 이후 kira kira에서도 전속으로 활동하며 갸루로 완전히 선회한다.

수 년후 그녀는 모친으로부터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다. 캬바쿠라에 일하면서 미모와 스타일에 자신감이 있었던 에미리는 평소 즐겨보던 잡지에 투고하여 모델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친구와 시부야 거리를 걷던 도중 패션 잡지에 사진을 찍혀서 데뷔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참조 ▶ 클릭 어느 얘기가 신빙성이 있는지는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것]]

“내가 온전하게 된 것은 어머니와 떨어져 살면서 부터이고 우울증이라던지 자살 충동등이 사라졌습니다. 도쿄로 가서 록본기의 캬바쿠라에 일하게 되었고 모델을 굉장히 좋아해 도쿄에 나오고나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집을 나오는 것을 반대했지만, 설득해 떨어져 살게 되어, 보통의 생활을 갖게 된 것이에요 “

 

전속모델로 활동했던 잡지 RANZUKI

그렇게 번화가를 걷고 있을 때, AV의 스카우트 맨이 말을 걸려졌다. 패션잡지의 모델인 것을 전하면, 정신을 쏟아 설득해 왔다.  그 날부터 무려 1년 이상을 소비해, 에미리는 AV출연을 설득해지고 있다. [[왜 스카우트 맨이 이처럼 처절하게 설득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엔 질좋은 여성을 소개하는 조건으로 소속사측으로부터 전속배우의 출연료의 5-8% 정도 되는 인센티브를 스카우터들이 반영구적으로 챙겨가는 문화가 있었다. 스카우터는 길을 걷는 여성의 걸음걸이나 생김새 표정 등을 읽으며 AV에 어울리는지를 귀신같이 간파하는 습성이 있기 마련이다]]  프로덕션의 사람들과 이럭저럭 점점 사이가 좋아져 버려 왠지 모르게, 할까 흐름이 되었다.

 

” 어째서 AV여배우인가? 그것은 꽤 어렵다. 유명 지향이 있거나 돈을 갖고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AV여배우가 되면 좀 더 유명하게 되는, 같은 의식은 있었어요. 실제로 그렇고. 당시의 나는 패션 모델 이상으로 유명하게 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저 유명하게 되고 싶은 느낌. 20살 안팎의 여자아이는, 모두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잡지 전속 모델에서는 지명도는 그 잡지의 독자만. AV여배우로 성공하면 지명도는 전국구가 된다.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려진 일에, 굉장히 매력을 느꼈다. 다만, AV여배우가 되어 잃는 것은 너무 많았다.

 

은퇴하면서 밝힌 AV에 대한 소회


사귀던 남자친구는 그녀가 AV를 하게된다는 사실을 알게 크게 격분하여 식칼을 들고 찌르려고 하는 등 거의 발광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정말로 사랑하는 연인이었기에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친 역시 AV 출연 사실을 알고 절연까지 당해가며 “기분 나쁘다” 는 소리를 모친에게 들었다.

 “집에 돌아가고 나서,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이것은 지금도 어떤 감정 이었는지 잘 설명 할 수 없는데요 “엄청나게 위험한 일을거야 아니냐”며 골똘히 생각하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조차 「저 녀석 AV에 떨어졌다』 『인생 끝이구나, 위험하다」 라는 비난을 들어가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이상 끝까지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실패한 인생이 될 따름이다.

 

2016년 전속으로 활동한 아이디어 포켓에서 240분 가량의 은퇴작을 내면서 5년간의 활동의 종지부를 찍는다.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히 보답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5년간을 이 바닥에서 버텼고 여전히  AV여배우에의 차별이나 편견은 뿌리깊다. AV여배우로서 탑을 달려 온 그녀라도, 바보 취급 당한다는 상황이었다. 5년간, 제일선에서 AV여배우로서 활약했다. 그렇게 점점 인정해 주는 사람이 증가해 갔다. 그녀를 다시 본 것은, 선배나 모델 친구 만이 아니다. 맹렬하게 반대하고 있던 모친은, 그녀가 나날 노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분노는 식어갔고, 지금도 미움은 없어지지 않는 부친도, 그늘에서 응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은퇴 이후의 삶


본인이 이미 트위터에 AV에 복귀할 의사가 없다고 강하게 못을 박은 만큼 차후 복귀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한다. 현재는 헬스로 근육질 몸매로 만들면서 베스트 바디 제팬[BBJ] 지역대회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몸매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단 BBJ 대회는 WBFF같은 육체미 대회로 보이며 전문 프로 보디빌더 과정에 대해서는 참조 ▶근육질 포르노 배우에 대한 재고찰]]어머니가 에스테틱을 운영했던 만큼 모계의 영향 때문인지 미의식이 높고 메이크업, 스타일리쉬에 아주 관심이 많다.

스스로 인터뷰에서 외모에 자신감이 있다고 밝혔다. 연기자가 아닌 이상 일반인이 셀럽이 되어 유명세를 떨치기 위해선 에미리처럼 육체미 대회에 참여하고 SNS로 홍보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은데 이런 현상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캬바쿠라는 전보다는 출근빈도가 줄어들어 아주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고 화장품, 의류 사업도 손대고 있다.

 

위 내용은 『名前のない女たち 貧困AV嬢の独白, 中村淳彦 著, 宝島社』 를 참조함
동의어:
丘咲エミ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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