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h.m.p 미소녀 아이돌 특집2 개의 글 중 2 번째 글입니다.

유키 마이코[夕樹舞子]는 1995년 h.m.p 에서 데뷔한 전속 배우였다. 특히 홍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일명 “아시아의 별” 이란 예명까지 얻었다. AV배우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가장 성공적으로 입증한 장본인이며 공전의 인기를 바탕으로 2차례의 은퇴와 복귀를 번복하는 등 흔치 않은 실례를 만들기도 하였다.

 

강간으로 얼룩진 첫경험과 유년시절


유키 마이코 [夕樹舞子]의 본래 이름은 와쿠이 마키[涌井麻紀] 로서 1977년 니키타 현에서 태어났다. 야쿠자 출신인 부모를 둔 덕분에 급우와의 관계가 좋지않아 학교폭력으로 얼룩진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부모의 계속되는 가정 불화는 그녀를 가출 청소년으로 만들었다. 급기야 교사와 심한 싸움이 최악의 사태로 번져 고등학교를 중퇴하기에 이른다.

또한 17살 때 아는 지인에게 강간당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녔다. 결혼할 때까지 처녀성만큼은 반드시 지키고 싶었지만 강간이란 불쾌한 경험을 체험하며 점점 자기비하로 연결된 것이다. 첫경험이 불쾌한 기억으로 끝나며 유키 마이코 [夕樹舞子]는 인터뷰 내내 성경험이 두렵다는 언급을 비친 바 있었다. 

남자와 사귀어도 항상 섹스가 두려웠고 이대로라면 자신은 영영 바뀌지 못할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중퇴 후 골프 캐디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이후 연기학교에 등록한 것을 계기로 우연히 AV 소속사 사장을 알게 되었다.[[http://www.jsexnetwork.com/interviews/Maiko_Yuki/ 참조]]

그는 AV 출연을 제의하였고 마침 남자에 대한 두려움을 고치고 싶던 그녀는 고민끝에 AV 출연 제의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와쿠이 마키[涌井麻紀]는 유키 마이코 [夕樹舞子] 라는 예명을 얻게 되어 h.m.p[당시 호유 미디어 프로덕션]의 전속 배우로 데뷔하게 되는 것이다.

 

AV 1차 활동 시기


그녀의 95년 데뷔작 『処女宮 卒業』 Tiffany는 h.m.p의 전속 배우가 출연하는 고급 레이블이었다.

95년 h.m.p의 얼굴마담으로 활약한 유키 마이코 [夕樹舞子] 였지만 여전히 남성 공포증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첫 촬영이 시작되자 불현듯 강간경험이 떠올라 남자가 너무 두려워졌고 이 때문에 촬영은 무려 5시간이나 지연되었다.

AV 제작진은 그녀의 성향을 알았기에 촬영시엔 최대한 상냥하게 대하며 비위를 맞추었다. 하지만 그녀의 좋지않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해서 그 진상을 캐보니 자신이 가장 신뢰하던 AV 스태프임을 알게 되었다. 또 다시 사람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며 96년 『さよなら 夕樹舞子』 를 끝으로 AV를 잠정적으로 접게된다. 

향간엔 그녀의 남성 공포증이 도져서 AV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 직접적으론 점차 축소되는 주변의 인간관계 또한 그녀의 불안증에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AV 출연에 따른 사회적 멸시와 비난 섞인 말들을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h.m.p에서 1년 남짓 단기간 활동 끝에 1차적으로 AV를 접게 된다.

 

h.m.p 시절의 유키 마이코


h.m.p 시절 유키 마이코 [夕樹舞子] 의 별명은 『소악마』 였다. 소악마처럼 발랄하면서 짖궂은 캐릭터가 독특했으며 특히 하얀 피부와 키도 적당히 단신이면서 살집있는 엉덩이, 가슴 등이 상당히 글래머스한 것이다. h.m.p 시기의 작품들은 이런 스타일에 맞추어 밝고 명랑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많았다. 

유키 마이코 [夕樹舞子] 의 튀는 매력은 확실히 일본인들이 좋아할 만한 상이지만 바다건너 저 멀리 홍콩사람들에게조차 상당한 흡입력으로 다가온듯 하다. 그녀의 작품이 해외로 수출되어 홍콩에 엄청난 파문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홍콩의 인기 스타가 되다


유키 마이코가 출연한 홍콩 영화 『홍콩 나이트 가이드』

이미 유키 마이코[夕樹舞子] 는 h.m.p에서 은퇴했기에 이대로라면 더 이상의 AV 출연이 없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이 그녀를 다시 AV로 복귀시키게 한다. 그녀의 불법비디오가 홍콩으로 유입되며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당시 홍콩은 영국의 영토였고 한국은 DJ 집권 이전이라 왜색규제가 엄격하여 소수를 제외하곤 구하기 조차 힘들었다. 따라서 유키 마이코[夕樹舞子]의 인지도는 한국과 중공을 제외한 홍콩-대만과 같은 자유 중국 진영에서 큰 반향을 얻었으며 홍콩 측은 유키 마이코[夕樹舞子] 에게 포토북과 영화 의뢰를 하게 된다.

 

당시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으로, 일본인에 대한 편견도 남아 있었고. 촬영에 관해서도 홍콩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어 당황했어요. 일본의 현장은 여배우를 소중하게 취급해 주는데 비해, 홍콩은 매스컴이 위이고. 시간 감각도 다르고 큰일이었어요

이미 홍콩 공항에는 그녀를 보기 위해 8천여명의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각종 언론사가 그녀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열띤 취재를 하였다. 홍콩에서 얻은 인기는 그녀가 AV 배우에 대한 이미지를 재고하게 만든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AV 2차 활동 시기


크리스탈 영상에서 발매된 98년 AV 복귀작 『復活の女神』

98년엔 성인 비디오를 주제로 한 NHK에서 방영된 『青い花火』 에 출연하는 호재를 가졌으며 실전 메이커로 유명한 크리스탈 영상에서 복귀하게 된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부재는 “홍콩의 인기스타” 였다. 다만 크리스탈에서의 이미지는 h.m.p처럼 발랄하거나 상쾌하지도 않았다. 몇 년 사이에 애교살이 빠지면서 풍만했던 가슴과 엉덩이가 다소 빈약해졌으며 하얀 피부도 구릿빛으로 바뀌었다.

인상이 날카러워지면서 SM, 본디지 같은 무거운 주제에 출연하게 되었고 99년 크리스탈영상에서 나와 어택커즈, CINEMAGIC 에 출연하게 된다. 이전의 『소악마』 이미지와는 완전히 별개의 양상으로 흘러간 것이다.

 

AV 3차 활동 시기


2010년 복귀작 Das에서 제작한 『復活 夕樹舞子』

그렇게 AV 업계에서 자취를 감춘 유키 마이코[夕樹舞子] 였지만 2010년 Das의 『復活 夕樹舞子』 를 통해 극비리에 업계에 복귀하게 된다. 물론 그 사이에 활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로쿠쟈』 에서 스트리퍼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2006년 SAMURAI PORN 에서 무수정 비디오가 출시되기도 하였다.

도대체 유키 마이코[夕樹舞子] 가 복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 AV를 바라보게 된 시선엔 변화가 있었을까? 이 장에선 유키 마이코[夕樹舞子] 의 복귀 비화에 대해 살펴본다.

 

AV에 복귀하게 된 이유


2019년인 현재도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간간히 소식을 알리고 있다.

Q. 그렇게 숨은 노고의 끝에 『아시아의 여신』의 칭호를 거둔 것이군요. 최근에는 스트립에서의 활약이 유명합니다만, AV에 복귀하려고 생각한 이유는?

A. 요즘 전설의 여배우라는 소리를 듣네요 제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어도, 유키 마이코는 현역 AV여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슬슬 AV도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웃음)

Q. 그럼, 왜 10년이나 AV로부터 멀어지고 있던 것입니까?

A. 사실 난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할까, 성적인 일에 서툴러서 당연히 업무상, 특기로 삼아야 하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익숙해지지 않아서요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AV 여배우 유키 마이코로서 열심히 하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랜만에 복귀한 소감


q. 내용은 스스로는 어떻습니까?

a. 제가 경험한 가운데는 최고로 하드했어요……, 첫 체험뿐으로. 바이브레이터입니까? 실제로 사용한 것은 처음이라 3초만에 무리. 실제로 했던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체감은 2시간 연속으로 전기체험을 당한 감각이라 한동안 몸이 얇아졌습니다.계속 손가락이 덜덜 떨렸어요 그러니까(웃음)

q. 3 P나 첫경험이었어?

a. 그렇습니다. 남배우씨의 리드가 능숙해서 예상보다 기분 좋았던 것이 놀랐어요. 그렇다는 것도, 3P는 예전에는 강간이나 강간의 종류였던 것이에요. 무서운 사람에게 무리하게 당해 버린다는 이미지 밖에 없었기 때문에, 설마 이렇게 평화적으로 기분이 좋은 3 P가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웃음)

 

예전과 달라진 제작환경의 차이


얼마전에 발매된 유키 마이코 복각판 시리즈 『殿堂入り女優シリーズ 夕樹舞子6時間 6作品』

Q. 그 밖에도 이전의 AV촬영과 달리 있어 놀랐던 것은 있습니까?

A. 대본이 얇아졌네요. 전부, 생략하고 써 있으므로 맥이 빠지지요 전에는 대본은 책처럼 두껍게 만들어지고 있어 장면마다의 지시서 같은 것도 있었으므로, 몇권도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잘 없어져서 많이 힘들었어요.

Q. 영화급이군요?

A. 그래요, 영화 같았어요.연기자의 각본이 있어 표지도 붙어 있었고, 얼굴 사진도 붙어 있었고

Q. 제작자와 연기자도 영화를 찍고 있는 감각과 완전히 같았어?

A. 그렇군요. 그건 똑같아요. 그런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최신촬영을 하고 있어서, 예전이 좋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예를 들면 도르차를 사용해 찍고 있던 씬도 지금은, 손으로 들고 촬영할 수 있어요.그렇게 해버리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카메라도 기술도 진보하고 있으니까 흔들리지않습니다 라고 스탭의 솜씨도 말야. 좋아졌고 카메라도 진화했어 멋지죠!

Q. 이전의 촬영의 기간은?

A. 최소라도 2박3일. 아침 8시에, 일어나서 9시까지 메이크업 씨한테 리프트업이나 마사지를 받고, 그 후에 식사를 하고. 촬영 시작은 10시 정도 부터일까

Q. 이번 부활은 길게 계속해 갈 예정입니까?

A. 모처럼 복귀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길게 노력해 가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위 인터뷰는 『ガチンコ 2010年 08月号』 의 기사를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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